남조선→대한민국 바꿔부른 北정권 속내…"2국가 체제로 특수관계 뒤집나"
공식문건상 대한민국 지칭, 文 '대한민국 대통령' 지칭 평양선언 이래 5년 만
《》씌우며 적대 계속…태영호 "민족 특수관계 번복 의심, 통일부 대북질의해야"
북한 정권 수뇌부가 약 5년 만에 우리나라를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으로 가리킨 입장을 내자, 남북을 '통일 상대인 특수관계에서 국가간 관계로 변경하려는지' 대북질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핵무력 사용을 공언한 가운데 적대국 관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 한다면 대북정책 전환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발단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2인자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副部長)이 지난 10일과 11일 낸 2차례 담화다. 미 공군 정찰기가 동해 배타적경제수역(EEZ) 상공을 누차 '침범'했다면서, "(김정은의) 위임에 따라" 군사적 대응하겠다고 반발했다.
이 가운데 '영공 침범' 문제가 아니며 미 측의 통상적인 한반도 정찰활동일 뿐이라는 우리 군 입장을 비난하면서 김여정은 10일 담화에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와 "《대한민국》족속" 등 표현을, 11일 새벽 담화에 "《대한민국》의 군부깡패"라는 문구를 썼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은 대한민국에 '겹화살괄호'(《》)를 씌웠다. 이는 보통 '강조'의 의미가 있지만 인용하면서 그 내용을 '부정'하는 뉘앙스도 풍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자칭하는 북한의 매체들이 우리나라 대통령·국회·정부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해왔다.
아울러 대대로 적대관계인 보수정당, 비(非)민주당 계열 정당, 언론사 등을 적시할 때도 겹화살괄호를 씌워 표기해왔다. 친북(親北)·진보성향으로 분류된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 옛 민주평화당 등의 당명을 언급할 땐 사용하지 않은 점도 대조된다.
2018년 9월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방북, 김정은과 회담에서 도출한 '평양공동선언' 전문을 통신·외무성 등으로 공개하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적시할 때도 겹화살괄호 표시가 없었다. 당시 이른바 '남북 평화 무드'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 선전매체가 지난 2019년 8월 민주당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대일 규탄성명 전문을 소개하거나, 11월 "대한민국을 흔드는 세력이 기승을 부린다"던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난할 때 《대한민국》으로 쓴 적은 있지만 공식문건 기준 '대한민국'이 등장한 건 약 5년 만이다.
북한이 사실상 '적대적 공존'에 무게를 둔 '두 개의 한국'(Two-Korea) 정책으로 변화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조선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과업 수행" 문구를 삭제한 바 있다.
대신 "공화국 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과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을 실현" 등의 문구를 넣었는데, 김일성 정권 때부터 이어져 온 북한 주도 통일을 포기하고 '국가대 국가'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8차 당대회부터 '대남담당 비서' 직책이 사라졌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직접 대남발표도 없어졌다. 대남업무 관계자들은 2019년 '하노이(미국 트럼프-북한 김정은 2차 회담) 노딜' 이후 줄줄이 '혁명화 교육'을 받거나 공식 석상에서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 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의 방북 계획을 거부할 때도 대남기구 조평통이 아닌 외무성을 앞세웠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북한의 2국가 체제 정책으로 풀이하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과 협의하지 않겠다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묻어난다"고 분석했다.
탈북 고위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앞서 김여정은 2021년 3월 한미군사훈련을 비난하며 존재 이유가 없어진 대남대화기구인 조평통을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리겠다는 협박을 했다"며 "어제와 오늘 두차례 걸친 담화에서 우리 국방부를 '대한민국의 군부'라고 지칭했다"고 주목했다.
그는 "더욱 명확하게 국가 간 관계를 의미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며 지난 1일 북한 외무성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선제적 불가'를 표명한 담화에 '입경' 대신 '입국' 표현이 쓰인 점도 짚었다. 그러면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민족'에서 '국가 간' 관계로 변경시키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태영호 의원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후 30여 년간 유지되온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근본적으로 뒤집히는 심각한 상황"일 수 있다며 "통일부는 김씨 남매에게 신속히 공개 질의서를 보내 김일성, 김정일도 지켜온 남북관계의 틀을 바꾸려고 하는 것인지 명백히 입장을 밝히도록 공개적으로 촉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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