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첫 안무작 공연…집요한 작업의 결실 뿌듯"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7. 1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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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수석 박슬기 인터뷰
피아졸라 탱고곡 연주하는
피아노 콰르텟 춤으로 표현한
'영혼의 사중주' 日 무대에
"창작 갈증 원없이 풀고
관객이 공감해줘 기뻐"
박슬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예술의전당 연습실 거울 앞에서 안무작 '콰르텟 오브 더 소울'의 한 동작을 시연하는 모습. 이승환 기자

피아졸라의 애절한 탱고곡 '아디오스 노니노'를 네 사람이 '몸'으로 연주한다. 비유적인 동시에 직관적 표현이다. 네 명의 무용수(허서명·조연재·박슬기·변성완)가 각각 피아노·첼로·바이올린·클라리넷이 돼 '춤의 4중주'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선율에 올라탄 이들의 움직임은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고독과 관능, 서정과 경쾌를 넘나들며 감정을 매료시킨다.

국립발레단의 간판 수석무용수 박슬기의 2016년 안무작인 '콰르텟 오브 더 소울(영혼의 사중주)'이 해외로 나가 'K발레'를 알린다. 앞서 발레단의 안무가 육성과 레퍼토리 개발을 위해 시작된 'KNB 무브먼트'에 출품된 후 호평받았던 작품인데 최근 일본의 초청을 받았다. 이달 15~16일 도쿄시티발레단 55주년 기념 공연 '트리플 빌'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앞두고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연습 중인 박슬기와 만났다. 그는 "한국인이 만든 모던 발레를 일본 무대에서 선보이는 데다 그게 제 작품이라 자부심이 있다"며 "안무 창작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도전하는 재미로 해온 것을 좋게 봐주셔서 뿌듯하고 설렌다"고 했다.

여섯 살 때부터 춤을 춰온 박슬기는 무대 위에서 바라본 풍경에서 첫 안무작의 영감을 떠올렸다. "발레는 항상 오케스트라와 협업하는데, 그들의 모습을 무용수의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흔히 무용수들은 '음악을 타라'는 이야기를 듣거든요. 음악을 이해하라는 얘기죠. 전 그걸 무용수의 몸이 직접 악기가 돼서 연주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구현했어요."

안무 창작에서 어려운 관문 중 하나는 음악 선정이다. 주제와 흐름에 딱 들어맞는 음악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디오스 노니노의 경우 피겨 여왕 김연아의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프리 프로그램 곡으로도 익숙한 노래. 박슬기 역시 김연아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 곡에 꽂혔고, 음악이 주는 영감을 따라 동작을 만들었다. 그는 "이 작품엔 특정 스토리나 의미가 들어 있지는 않다"며 "관객은 무용수가 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각에 몰두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아직 안무가라는 호칭이 어색하다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은 무대를 위한 '집요함'으로 발현되곤 한다. 그중에서도 극 초반 피아노 솔로 파트는 특별히 공들인 부분이다. 피아졸라가 부친의 부고를 듣고 이 곡을 만들 때 느꼈을 슬픔과 애도, 사랑 등 깊고 복합적인 감정을 담았다.

"안무 연습 때 '집요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파트별로 다르긴 한데, 특히 피아노 솔로는 곡의 느낌과 무게감을 잡아주는 역할이라 안무도 세세하게 짰고 표현하려는 바가 뚜렷하거든요. 연습이 총 1시간이라면 30~40분을 피아노에 쏟죠. 그에 비해 첼로 등 다른 악기는 무용수의 색깔에 맞출 수 있게 열어두기도 해요."

'무용수로서의 경험이 안무 창작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것 같냐'는 질문에 박슬기는 단번에 "99%"라고 답했다. "안무는 경험에서 나와요. 제 안무를 '창작'이라고는 하지만, 이전에 그 동작들을 해봤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몸과 머리가 기억하는 움직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안무가로서의 포부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3~4명이 등장하는 소품작 위주로 만들었지만 앞으론 다수의 무용수가 등장하는 대규모 작품도 꿈꾼다. 박슬기는 "발레단의 무용수 등 좋은 조건이 다 갖춰진 상황에서 내 창작의 고통만 갈아넣으면 되는 환경"이라며 "가끔 '이렇게 힘든 걸 왜 사서 고생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년에는 또 이런 걸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으로는 "온전히 내 것이 하나 완성된다는 느낌"을 꼽았다. 무대 위에서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발레리나도 때론 '창작'에 갈증을 느꼈던 걸까. 그는 "클래식 등 받아서 하는 안무 작업은 안무가가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그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며 "안무가는 내가 느낀 걸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박슬기 안무'의 중요한 특징은 '공감'이다. 사실 현대무용 중에는 다소 난해하고 심오한 작품, 결말을 열어두는 작품도 많다. 반면 박슬기는 "무대에 오를 땐 내 표현을 관객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가, 관객이 받아들이는 공감에 대해 항상 크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이슈도 주요한 소재다. 예를 들어 그의 안무작 중 '스몸비'(2018)는 스마트폰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인간을, '프롬 어 휴먼 빙'(2020)은 환경 문제를 다뤘다. 최근엔 인공지능(AI)을 주제로 한 작품도 구상 중이다.

"어떤 분들은 제 작품을 보고 '너무 떠먹여 준다'고 하지만 저는 그냥 주고 싶어요. 제 작품이 직관적이었으면 좋겠거든요. 왜 무용수가 이런 동작을 하는지, 관객에게 의문보다는 확답을 주고 싶어요."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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