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처벌 국가’···‘자유’와 ‘시장’의 이름으로 개인 소외

김종목 기자 2023. 7. 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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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황해문화 ‘통권 120호, 창간 30주년’ 심포지엄
민중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정의로운 전환’ 제시

계간 ‘황해문화’는 1993년 겨울 인천에서 창간호를 냈다.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종이 매체 쇠퇴·소멸과 서울 중심 담론 강화 같은 악조건을 버티며 최근 통권 120호를 발행했다. 올해는 발행 30주년이 되는 해다.

황해문화는 ‘통권 120호, 30주년’을 두고 “평범한 시민들과 약소자들, 곧 우리 사회 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했다. 2013년 낸 20주년 기념호에도 ‘할 말이란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 ‘억울한 사람’ ‘그동안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던 사람’의 말을 올렸다. 해고자, 탈북자, 화교, 병역거부자, 페미니즘 운동가, 촛불 청소년, 해직 교사·기자, 내부고발자, 서점주인, 만화가들 46명이 쓴 “일종의 집단적 민중 자전”(김명인 당시 주간)을 냈다. 2006년 50호 발간 때도 “(시대적) 혼돈의 상황을 직시하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불행과 고통과 갈등과 비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이 황해문화의 자세라고 했다.

황해문화 창간호인 1993년 겨울호. 황해문화 제공

황해문화는 이 30주년에 “명실상부 한국의 비판적 공론장을 대표하는 잡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도 자평했다. 여러 종류의 매체가 진영 논리에 휩싸였을 때도 황해문화는 불편부당한 기조를 이어왔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코로나 불평등, 디지털 노동과 기후, 양대 정당 카르텔, 청년 불안정, 젠더 정치, 여성 혐오 등 한국 정치사회의 갖은 문제를 비판적으로 짚으며 ‘비판적 인문사회과학 계간지’의 소임을 수행했다.

통권 120호와 기념 심포지엄(8일 개최)에서도 ‘을들의 목소리 대변’ ‘전 지구적 시각’ ‘지역적 실천’ ‘비판적 공론’을 확인한다. 심포지엄 제목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다중재난 시대의 새로운 길 찾기“다.

황해문화는 심포지엄 기획 취지에서 환율 인상, 금융 불안정, 부동산 가격 하락, 가계부채 문제 같은 누적된 위험 요인을 두고 나온 ‘복합위기’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위기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치안(police)’의 관점에서 이해된 위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존 지배 질서의 안정적인 재생산이 최고의 목표”인 치안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모두 무차별적으로 위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치안에게는 인플레이션이나 금융 불안정도 위기이지만 민주화 시위도 위기이고 세월호 참사도 위기입니다.”

황해문화는 창간 30주년·통권 120호 기념 심포지엄 주제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다중재난 시대의 새로운 길 찾기’를 정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승원(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선임연구원), 김선철(기후정의활동가), 장석준(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 기획위원), 이광일(정치학자, 황해문화 편집위원), 김정희원(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승윤(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황해문화 제공

지금 언론과 정치권의 ‘복합위기론’은 문명과 민중 삶에 막대한 피해를 낳는 인류세·자본세의 생태 재난이나 코로나 팬데믹 같은 보건 재난을 방치·배제한다고 지적한다. 황해문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래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이나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로 대표되는 사회적 재난들과 더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 여성과 성적 소수자들, 장애인들, 이주자, 탈북민, 난민 등과 같은 사회적 약소자들이 직장에서, 일상에서 직면해 있는 불안전 재난도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동아시아의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 가시화를 두고도 “군사적 긴장만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을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은 점차 멀어지고 적대적인 대결 구도가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고 이는 다시 민중의 고통을 가중하는 악순환의 경로가 고착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황해문화는 ‘진정한 위기’를 “치안이 명명하는 ‘복합위기’가 아니라 그것이 은폐하고 배제하는 다중적 재난들”로 규정하며 “(서로 중첩된 다중적 재난들로)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 하는 민중들, 곧 을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사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의로운 전환’은 “다중재난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것에 맞서고 있는 민중의 관점에서 이러한 재난들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진보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다중적이고 다면적인 노력의 방향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명칭”이다. 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우선 살펴야 할 것은 ‘돌봄’이다.

김정희원(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 ‘반폭력으로서 돌봄 정치’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

김정희원은 윤석열 정권 문제와 국가폭력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한국의 사회적 약자·소수자(노동자, 여성, 퀴어/트랜스, 장애인, 빈곤계층, 농민 등)를 상대로 한 차별·혐오 및 폭력 증대는 지구적 경향과 비슷한 결을 보이면서도 질적으로 구별되는 속성을 띈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왜곡된 의미의 ‘자유’와 ‘법치’를 내세우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윤석열 정부”는 “‘민생’을 거론하는 그럴듯한 수사를 구사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약자·소수자,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폐지하거나 이들을 통제 또는 억압하는 다종다양한 전략을 기획”한다. 이는 국가폭력과 이어지는 문제다.

국가폭력을 이해할 때 중요한 점은 “민주주의(또는 민주국가)가 결코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노예제와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게 한 예다. 김정희원은 “여전히 어떤 이들은 전쟁이나 학살 같은 ‘스펙타클한 폭력’만을 국가폭력으로 간주하지만, 특정 정체성이나 집단을 상대로 한 현대의 국가폭력은 보다 교묘하거나 드러나지 않는, 또는 매우 장기간에 걸친 구조적 폭력의 양상을 띄고 있다”고 했다. 권리 박탈, 정책 폐지, 보호 규제 철폐, 특정 지역 또는 집단에 대한 의도적 저개발, 예산 삭감, 문제 상황 방치, 폭력 및 차별 방조 등을 예로 들었다. 김정희원은 “이런 측면에서 현 정권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는 세대에 걸쳐 ‘비-남성’ 또는 ‘비-정상’ 범주로 구별되는 집단의 차별과 불평등을 고착화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형태의 국가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희원은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 정권의 보수화 정책이 일상화된 구조적 폭력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확대재생산한다고 지적한다. “법, 제도, 행정을 통해 퍼져나가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폭력은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고, 혐오 발언 같은 폭력적 문화 및 사회적 관행을 고착화시키며, 소수자와 약자 집단이 차별과 불평등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며 “법과 제도를 통해 (때로는 조용히) 작동하고 확장하는 다종다양한 억압을 국가폭력의 범주로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고 했다.

김정희원은 윤석열 정권을 ‘신자유주의적 처벌 국가’로 개념화한다. 이 신자유주의적 처벌 국가는 “‘자유’와 ‘시장’의 이름으로 개인을 소외시키고 원자화하며, 동시에 다양한 처벌 기제와 공권력 수행을 통해 개인을 사회로부터 축출하고 범죄화”한다.

김정희원은 지난 수년 간 이어진 노동자의 분신, 재해 사망, 노동조합원들의 처벌 및 구속,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자살, 퀴어/트랜스의 정신질환, 장애인의 시설 격리 등 다양한 양태의 사회적·생물학적 죽음을 두고 ‘돌봄’ 문제를 들여다본다. 그는 “감염병, 재난, 기후위기와 경기 침체는 자본주의의 위기뿐만 아니라 돌봄과 생명 재생산의 위기 또한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탈성장론자들이 제안하는 ‘돌봄 찬(care-full) 사회’는 인간-비인간 모두를 위한 존엄, 정의, 상생을 추구하자는 제안으로서, 이 세계를 재조직하기 위한 새로운 원리로 중심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황해문화가 ‘정의로운 전환’의 주 대상으로 삼는 건 “자연과 인간, 주체와 객체, 공공성과 사유성, 국민 대 비국민, 남성과 여성 등과 같이 대립적이고 경쟁적인 범주들에 의거하여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이다. 생태와 보건 재난, 불안전 재난, 신냉전 전개, 디지털 자본주의 심화는 “사회의 공동 이익 및 인류의 공동 생존을 추구해야 할 집합적인 정치적 주체를 해체하여 그들을 서로 상이한 이익 추구를 위해 끝없이 경쟁하는 신자유주의적인 행위자들”로 바꾼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중 재난이 직·간접적으로 자본주의의 비이성적인 광기와 연결되어 있다면, 정의로운 전환의 시도는 자본주의 이후라는 문제, 자본주의를 넘어서라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도 했다.

김관욱(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 ‘디지털 자본주의와 노동: 그 성격, 의미, 건강, 그리고 정동’, 장석준(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 기획위원)이 ‘자본주의를 넘어’를 발표했다. 생태 문제를 두고 홍덕화(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후위기, 수출과 성장 너머의 사회로 가는 길을 묻다’, 김선철(기후정의활동가)은 ‘기후정의운동: 존엄한 삶을 향한 ‘을들’의 집합적 힘’을 냈다. 백승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전쟁과 폭력: 얄타체제 해체 이후 위기의 세계’는 ‘전지구적 사고’에 관한 발표문이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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