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평가 15년…공정성·전문성이 흔들린다
신의료기술평가의 공정성과 전문성이 흔들리고 있다. 2007년 도입된 신의료기술평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의 신뢰성 있는 발전을 도모하자는 게 본래 취지였다. 그러면서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객관적인 근거(공정성)와 전문가 토론(전문성)을 통해 평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취지는 빛이 바래 의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의료인의 창조적 혁신을 가로막는 중복 규제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내 최고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15년이 넘는 연구 끝에 개발한 '심장재생 줄기세포 치료법(매직셀)'은 2020년 11월 결국 혁신의료기술로 선정됐지만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평가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져 2019년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전례가 있다.
매직셀은 심근경색 스텐트 시술 후 자가 혈액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심장 근육에 주입해 재생시키는 치료법이다. 영국 랜싯과 같은 권위 있는 국제저널에 논문 20여 편이 게재될 정도로 검증을 거쳤지만, 유효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NECA 통과가 좌절됐다. 당시 의료진은 상당수 평가위원이 매직셀을 이해하지 못한 비전문가였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에 앞서 2019년 6월 경혈을 두드려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한의술 '감정자유기법(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s)'은 신의료기술로 인정을 받았다. 감정자유기법은 경혈을 두드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STD)를 완화하는 한의정신요법 중 하나다. 감정자유기법의 등재 후 의료계에서 논란이 일자 NECA는 심사가 공정했다고 밝혔지만 후폭풍이 여전하다.
의료계는 내외측 상과염, 즉 팔꿈치 치료에만 국한된 '자가지방 줄기세포 치료'의 신의료기술 등재도 폭넓게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근골격계 질환의 자가지방 줄기세포 치료와 관련된 국내 논문들을 보면 퇴행성관절염 환자 중 85%가 통증 완화와 관절 기능 향상을 경험했다.
이처럼 신의료기술평가는 2007년 도입 취지와 달리 문헌적 고찰 중심으로 진행되는 '객관적인 근거'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었고 '전문가 토론'은 팥 없는 찐빵처럼 비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NECA가 요구해 제출한 RCT(무작위 대조 임상시험) 논문 평가도 '고무줄'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내 논문의 근거 수준이 '최고 등급(1)'임에도 '중하위 등급(2~3)'에 해당하는 해외 논문이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 평가도 새로 개발한 의술 및 의료기기 관련 전문의가 하지 않고 전혀 전공이 다른 의사나 논문 한번 안 써본 간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누가 누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영역 평가는 진짜 전문가에 의해 이뤄져야 공정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왜곡된 신의료기술평가는 곧 국민 건강과 안전에 직결된다. 의사라도 모두 똑같은 의사가 아니다. 전공 진료과목이 천차만별이고 수술 한번 안 해본 전문의가 많다. 매일 수술을 집도하는 정형외과 전문의라도 관절내시경술과 인공관절수술은 영역이 다르다. 이 때문에 관절내시경 의술을 인공관절수술 전문의가 평가하는 것도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 하물며 수술하지 않는 내과 의사가 수술 관련 혁신의술이나 의료기기를 책상에 앉아서 평가한다는 것은 잘못됐다는 얘기다.
한 종합병원장은 "신의료기술이 사실상 결정되는 NECA 소위원회는 의사와 진료과의 이기주의로 환자 및 신의술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면서 "신의료기술평가가 NECA와 일부 의료인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 걸맞게 신의료기술평가제를 확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NECA 소위원회 위원들 성향에 따라 신의료기술 등재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서울대병원 교수는 "NECA 소위원회는 어떤 위원이 들어가는지, 위원장이 누구인지에 의해 결정이 달라질 정도로 주관성이 많이 반영된다"며 "구체적인 명단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위원들의 결정이 근거 기반으로 나온 것인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제한적 의료기술(자가지방 줄기세포 치료술)' 재승인에서 탈락한 관절종합병원은 제한적 의료기술 평가위원장이 수술과 무관한 소화기내과 전문의라는 점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의료기술평가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의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신의료기술평가를 신청해 평가 대상으로 결정되면 NECA에 송부된다. NECA는 분야별 전문평가위원회나 분야별 전문평가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열어 안건을 논의한다. 소위원회를 통과하면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그 검토 결과를 반영해 △안전성·유효성이 있는 의료기술 △제한적 의료기술 △혁신의료기술 △연구단계 의료기술로 구분해 의결하고 그 결과를 복지부 장관에게 보고한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협회, 대한한의사협회, 소비자단체, 변호사단체 추천인 및 보건의료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심의사항을 전문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총 7개 분야별 전문평가위원회가 가동된다. 분야별 전문평가위원회는 내과, 외과, 치과, 한방 등 1400여 명이 위원으로 활동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심의하는 위원회의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NECA 소위원회에서 근거 논문 분석과 회의를 거쳐 전체 위원회에 상정하는데, 전체 위원회에는 해당 기술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 위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 이런저런 이유와 논리를 들어 신의료기술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면 탈락하는 경우도 있어 위원회의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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