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지 않다고 많이 먹었다가…중독돼 버렸당
무더위 탓에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여름철에는 어느 때보다 당류를 많이 접하게 된다.
탄산음료와 커피를 비롯해 식사 후에 먹는 디저트나 과자에도 대부분 설탕이 다량 함유돼 있다. 설탕이 많이 함유된 당류(糖質·glucide)는 물에 잘 녹으며 단맛이 있는 탄수화물이다.
당류는 당질의 한 종류로 단당류·이당류를 말한다. 당질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것은 탄수화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탄수화물은 '당질+식이섬유'로 이뤄지는데 당질이 대부분이다. 라면은 탄수화물 78g, 식이섬유 0g이기 때문에 당질이 78g이다. 단당류에는 포도당, 과당, 갈락토오스가 있고 이당류에는 설탕(포도당+과당), 유당(포도당+갈락토오스), 맥아당(포도당+포도당)이 있다. 다당류에는 글리코겐, 셀룰로오스, 전분이 있다. 단당류는 단당류 자체 1개, 이당류는 단당류가 2개, 다당류는 단당류가 3개 이상 결합된 것이다. 다당류든 단당류든 소화되면 분해돼 결국 간에서 포도당으로 전환된다.
우리가 당질에 주목하는 것은 당질 중독을 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이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비만을 부르는 당질의 대부분은 밥·빵·면류 등 달콤하지 않는 탄수화물이다. 실제로 비만자는 밥이나 면류를 상당히 좋아하는 경향이 높다. 이는 식탐이 강해서가 아니라 먹을 수밖에 없는 뇌 상태 때문이다. 쉽게 말해 '당질 중독'이라는 얘기다.
중독은 의학용어로 '의존증'이다. 의존증에는 약물·당질·알코올 등 특정한 물질을 포기하지 못하는 '물질의존'과 쇼핑·인터넷·도박 등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행위의존'이 있다. 이 두 가지 의존은 '뇌가 쾌감을 잊지 못한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 당뇨병 전문가인 마키타 젠지 AGE마키타병원장(의학박사·'당질중독' 저자·문예춘추사)은 "당질 중독은 만병의 근원인 비만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지병"이라며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질환은 심장병만이 아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비롯해 만성 신장병, 뇌졸중, 암, 알츠하이머병 등 무서운 병은 모두 비만과 관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탄수화물에 의한 당질 중독이나 비만과 관련해 마키타 원장은 "우리가 섭취한 당질은 거의 모두 포도당이 된 다음 몸 안에서 낭비 없이 흡수되기 때문에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몸속 지방이 점점 늘어나 살이 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밥·면류 등의 탄수화물은 다당류지만 입으로 먹으면 소화 과정에서 모두 단당류인 포도당으로 분해되며 소장을 통해 흡수되면서 혈액 속으로 보내진다. 결국 밥을 먹든 설탕을 먹든 마지막으로 포도당으로 흡수된다. 예를 들어 우동 한 그릇에는 약 57g의 당질이 들어 있는데, 우동으로 가볍게 끼니를 때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각설탕 14개를 먹는 셈이다.
포도당 흡수로 혈당치가 올라가면 인슐린이 분비돼 혈액에 넘쳐나는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바꿔 간과 근육에 저장한다. 하지만 글리코겐으로 저장되는 양은 한정돼 있어 남은 포도당은 중성지방인 트리아실글리세롤(triacylglycerol)로 치환돼 지방세포에 축적된다.
한때 '두뇌 회전을 위해 당질을 섭취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회의할 때 피곤하면 '당분을 충전하지 않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사탕을 먹곤 했다. 그러나 이는 뇌를 당질 중독으로 만들 수 있다. 마키타 원장은 "생화학을 제대로 이해하면 포도당이 부족하다고 해서 두뇌 회전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당질을 많이 섭취하면 오히려 뇌가 중독돼 버린다"고 강조했다.
단백질이나 지질은 그렇지 않지만 당질 중독이 되는 것은 주로 '보상계'라는 호르몬이 관여한다. 우리 뇌에는 애초에 '당질을 섭취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여기에 행복과 쾌락을 경험한 뇌가 계속 보상을 요구한다. 처음에는 찹살떡 하나로, 혹은 라면 한 그릇으로 행복한 기분이 들었지만 점점 뇌가 요구하는 양이 늘어나 한 개 먹던 찹쌀떡을 두 개 먹어야 하고, 한 그릇 먹던 라면을 두 그릇 먹어야 보상을 받았다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당질 중독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의 열쇠는 '혈당치(血糖値)'다. 탄수화물, 과자, 과일, 설탕이 들어간 음료수 등 당질을 섭취하면 혈당이 상승한다. 기름기가 많은 스테이크는 영양분이 주로 단백질이나 지방이어서 혈당치가 거의 오르지 않는다. 채소는 기본적으로 혈당치를 올리지 않지만 감자나 호박 등 당질이 많은 종류를 먹으면 높아진다.
결국 혈당 상승은 당질량에 달렸다. 섭취한 당질량이 많으면 혈당치가 급상승하고, 올라간 혈당치를 낮추기 위해 췌장에서 재빠르게 대량의 인슐린이 분비된다. 그런데 인슐린이 대량 분비돼 혈당치가 급격히 내려가 80까지 떨어지면 괜찮지만 70 이하가 되면 '저혈당'이 된다. 저혈당이 되면 우리 몸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뇌에서 명령을 내려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대량 분비함으로써 여러 가지 불쾌한 증상으로 신호를 보낸다. 구체적으로 짜증, 공복감, 식은땀, 두근거림, 떨림,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들 증상은 "당장 빨리 당질을 섭취하라"는 뜻으로 뇌에서 내리는 명령이다. 이에 따라 당질을 섭취하면 혈당치는 상승하고 동시에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뇌에서 분비된다. 도파민은 불쾌한 증상을 완화해주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것이며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중독이 되면 대뇌 보상계 신경조직이 비대해져 결국 더 많은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
당질은 섭취한 음식 종류에 따라 혈당치 상승에 영향을 준다. 밥이나 빵, 면류는 상승 곡선이 완만하지만 설탕이 많은 달콤한 간식류는 혈당치가 빠르게 올라간다. 캔커피·주스 등의 액체 음료가 대표적이다. 액체로 되어 있는 당질은 위에서 소화할 필요 없이 곧바로 소장으로 운반되므로 입속으로 들어간 후 30분이 지나 흡수돼 혈액 속에 포도당이 흘러넘친다. 이때 혈당치가 약 200까지 상승하는 '혈당치 스파이크'가 나타난다.
마키타 원장은 "편의점이나 자판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당질이 듬뿍 들어 있는 탄산음료나 주스는 한마디로 '악마의 식품'"이라고 밝혔다.
혈당치는 70(공복 혈당)~140(식후 혈당) 범위에서 조절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변동 폭이 크면 혈관을 손상시키고 우리 몸의 각 부분을 악화해 자연히 당질 중독이나 비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혈당치는 탄수화물을 지질이나 단백질 등과 함께 먹으면 천천히 올라간다. 즉 같은 양의 밥 한 그릇을 먹을 때 밥 위에 김가루만 뿌려서 먹는 것보다 구운 삼겹살을 곁들여 먹는 게 좋다. 마찬가지로 우동이나 국수를 먹는다면 다른 건더기 없이 장국만 부어 만든 '가케우동'이나 장국에 찍어 먹는 '메밀국수'는 혈당치를 가장 쉽게 올리는, 즉 당질 중독에 걸리기 쉬운 식사법이다. 특히 바쁜 업무로 점심을 면류나 삼각김밥, 햄버거로 단단히 때우는 사람이 많은데, 이때 혈당치가 급상승·급강하하게 된다. 기름기 많은 스테이크 200g보다 삼각김밥 1개, 메밀국수 1인분이 더 살이 찐다는 얘기다.
혈당치 변동은 당뇨병 환자에 국한되지 않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당질을 섭취하면 혈당치가 올라가고 스트레스만 받아도 상승한다. 당질에 중독되면 몸이 비대해지고 혈액 중 포도당이 많아져 'AGE(최종당화산물·Advanced Glycation End-products)'라는 노화 촉진 물질이 많이 생성된다. 당뇨병은 물론 고혈압, 암, 심근경색, 뇌졸중, 만성신장병, 알츠하이머병 등에도 노출된다.
당질 섭취와 당질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평소 혈당치가 크게 상승하지 않도록 식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또 당질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뇌를 속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채소, 버섯, 해조류, 콩류, 육류, 생선, 두부는 혈당치를 거의 올리지 않는다. 이와 달리 밥, 빵, 면류 등의 탄수화물이나 고구마 등 당질이 많은 뿌리채소, 호박 등 당질이 많은 채소, 설탕이 잔뜩 들어 있는 청량 음료수는 혈당치를 크게 상승시킨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반찬이나 가공품에는 상당한 당질이 포함된 사례가 있다. 튀김옷도 주의해야 한다. 닭고기 자체와 튀기는 기름은 혈당치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탄수화물 덩어리인 튀김옷이 문제다.
뇌를 속이는 것은 기분을 맞춰가면서 식사할 때 당질을 조금씩 줄여나간다는 의미다. 탄수화물만 먹지 않고 지질이나 단백질과 함께 섭취하면 혈당치가 잘 오르지 않는다. 또 탄수화물을 먹기 전에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 같은 것을 먹어두면 혈당치가 상승하지 않는다. 빵을 섭취할 때도 빵만 먹지 말고 버터를 발라 먹거나 올리브 오일에 찍어 먹는 게 좋다. 라면도 해물라면을 권장한다. 정식을 먹는다면 우선 작은 그릇에 담긴 채소를 섭취하고 다음으로 고기와 생선 등 메인요리를 먹은 뒤 마지막에 밥을 먹도록 한다.
마키타 원장은 "탄수화물을 먹을 때 칼로리를 낮추려고 탄수화물만 '단독으로' 섭취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며 "식사를 할 때 먼저 채소와 단백질부터 먹고 탄수화물은 마지막에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여름철 갈증이 나면 시원한 물이나 탄산수를 선택하는 것이 좋고 카페 등에서 빙수를 먹을 때는 시럽을 적게 담도록 주문해 덜 달게 먹는 식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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