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인 ‘먹튀’ 논란, 무책임한 방치에 대한 결과다

이정수 기자 2023. 7. 1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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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금융부 기자

수천억원대의 피해를 발생시키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믿을 수 있을까. 가상자산업계에서는 피해가 발생해도 이에 대한 처벌을 못 내리는 비상식적인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업체들은 부실한 운영으로 수백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양산해도 마땅한 법이 없다는 이유로 거의 방치되고 있다.

지난 6월 하루인베스트, 델리오와 같은 여러 가상자산 예치업자들은 경영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그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업체들은 고객이 가상자산을 맡기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맡긴 자산 가치 10% 이상의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려 왔는데, 가상자산 시장이 얼어붙자 사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현재 하루인베스트 사태로 발생한 피해 금액만 최소 1260억원이며 그 피해자 수도 500명이 넘는다. 델리오의 피해 규모까지 합치게 되면 그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회사는 국내 가상자산 예치업체 1, 2위에 해당하는 만큼 피해가 다른 곳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향한 경고의 목소리가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이다. 불과 지난해만 하더라도 해당 서비스를 둘러싼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전 세계적인 가상자산 침체기의 신호탄을 쏜 루나·테라 사태가 대표적이다.

과거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테라 코인 투자자들을 모으기 위해 ‘앵커 프로토콜’이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앵커 프로토콜은 투자자가 테라의 스테이블 코인인 UST를 예치하면 이에 상응하는 이자를 지급하는 방법으로 운용돼 왔다. 당시 권 대표가 약속한 이자율은 연 19.5%. 단 100만원만 투자해도 받을 수 있는 이자가 20만원 가까이 되니 앵커 프로토콜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다만 그 높은 이자율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권 대표는 내놓지 못했다. 과거에도 앵커 프로토콜 작동 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이 많았다. 한 트위터 유저는 권 대표에게 “앵커 프로토콜의 막대한 이자는 어떻게 지급되는가”라고 물었지만 권 대표는 오히려 이를 조롱하기도 했다. 결국 테라 코인이 무너지자 그 생태계를 지탱해 온 앵커 프로토콜은 대표적인 ‘폰지(다단계) 사기’의 사례로 남게 됐다.

국내 5대 거래소 중 하나인 고팍스 사태도 빼놓을 수 없다. 고팍스는 고파이라는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운영해 왔다. 시장에 활기가 돌 때는 괜찮았으나, 지난해 11월 세계 3위 규모의 가상자산거래소 FTX가 파산하면서 고파이 사업도 좌초됐다. 현재 고파이에 묶인 고객 예치금 규모는 약 566억원으로 추산된다. 고파이 사태로 고팍스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며 창립 이래로 최대 위기를 겪는 중이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피해가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로 발생했지만 취해진 조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에 적용할 법이나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델리오의 경우 금융위원회에 신고된 가상자산사업자(VASP)이기에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지만, 하루인베스트는 해외에 설립된 법인이기에 규제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결국 처벌을 위해선 투자자들이 사기, 배임 등의 죄목으로 직접 고소해야만 한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앞으로 비슷한 사태가 터져도 마땅한 처벌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주요 내용은 거래소 이용 고객에 대한 보호가 전부다. 현재 정부 및 금융 당국은 법 보완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여러 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 담길지는 미지수다.

하루인베스트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한 법조계 인사는 이번 사태를 두고 예견된 참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가상자산 불경기 속에서 그 높은 이자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또한 만일 기본적인 감독만 이뤄졌다면 이번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여러 사태를 겪고도 이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벌써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피해자만 수백명이 넘는다. 이보다 더 큰 사고가 터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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