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칠성개시장 폐쇄” “개인의 자유”…개고기 식용 논란 ‘와글와글’

권영진 전 시장 때 2020년 폐쇄 약속
홍준표 시장 취임 후 ‘사실상 없던 일’

초복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오후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의 모습.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개시장인 이곳에서 개고기를 판매하는 보신탕 업소와 개소주 판매점 14곳이 영업 중이다. 김현수 기자

초복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낮 12시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개시장인 이곳에는 개고기를 판매하는 보신탕 업소와 개소주 판매점 14곳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식당마다 10~30명의 손님이 앉아 있었다. 손님들은 60~70대가 대부분이었다.

시장에는 개고기를 삶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가게 앞에서 도마를 펼쳐놓고 개고기를 손질하거나 시장 구석에서 호스를 이용해 개고기를 씻고 있는 업주도 보였다.

대구시가 위생 등을 문제 삼아 개를 가두는 이른바 ‘뜬장’과 도살장은 모두 사라졌다. 다만 업소용 냉장고 안을 볼 수 없게 올려둔 종이 사이로 개의 사체가 드문드문 보였다.

보신탕 가게를 40년간 운영했다는 한 식당 주인은 취재진을 보고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세금 낼 것 다 내고 장사하는데 왜 범죄자 취급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신탕 업소 곳곳 간판에는 ‘개고기 판매’라는 문구에서 ‘개’자를 없앴다. 흰색 천으로 가려놓거나 노란색 테이프로 글자를 가려놓는 식이다. 한 업주는 “매년 복날마다 시민단체가 찾아와 데모를 해대니 속이 시끄러워 살 수가 없어 가렸다”고 말했다.

초복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의 모습. 김현수 기자

초복을 맞아 ‘개고기 식용’ 논란이 올해도 반복됐다. 동물보호단체는 공식적으로 개고기를 팔고 있는 대구 칠성개시장의 폐쇄를 요구했고, 대한육견협회는 “개인의 자유”라고 맞섰다.

대구생명보호연대는 11일 오전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는 칠성개시장의 조기 폐쇄를 추진하라”며 이를 촉구하는 시민 서명부를 제출했다. 이들은 한 달간 3219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대구생명보호연대는 “80%가 넘는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먹을 의사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개고기 보신문화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이 2020년 국내 식용견 소비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83.8%가 개고기를 소비한 적이 없거나 앞으로도 개고기를 소비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또 58.6%는 개고기 금지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미연 대구생명보호연대 대표는 “칠성개시장 상인들은 폐쇄 및 업종 전환을 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며 “개시장의 조기 폐쇄를 위해 남은 건 대구시장의 의지”라고 말했다.

초복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의 모습. 김현수 기자

칠성 개시장은 권영진 전 대구시장이 2019년 “개 식용 문제가 시대적 흐름이나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라며 2020년까지 폐쇄를 약속했다. 그러나 보상 등의 문제로 미뤄지다가 홍준표 대구시장이 취임하면서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홍 시장은 지난해 7월 자신의 온라인 플랫폼 ‘청년의 꿈’에 ‘개고기 식용 문제는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홍 시장님의 의견이 궁금하다’는 글에 “개인의 자유”라고 답글을 달았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는 “(대구시장) 당선 이전에 ‘개고기 식용 금지’를 찬성한다고 했던 홍 시장이 당선된 후에는 말을 바꿨다”며 “시장은 식용견과 반려견을 구분 짓고 있느냐”고 말했다.

애견인으로 알려진 홍 시장은 2021년 9월 칠성시장을 방문해 “개를 식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의견을 전한 바 있다. 당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반려견이 자식처럼 되어버린 시대적 변천이 왔는데, 아직도 개 식용을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쓰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지난달 28일 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가 ‘개·고양이 식용금지에 관한 조례안’에 대해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국회가 상위법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심사 보류했다. 조례안은 원산지·유통처 등이 불명확한 개고기를 취급하는 업체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동물자유연대 등 전국 31개 동물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 회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2023 개 식용 종식 촉구 국민대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육견협회는 “식용 개 사육과 유통, 식용은 합법이며 자유”라고 주장한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생존권 투쟁위원장은 “국민의 먹을 권리를 규제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면서 “국민 누구도 개를 먹지 않겠다면 모를까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한육견협회 회원 200여명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에서 지나가는 시민에게 “맛있고 기름이 적어 좋은 보양식”이라며 ‘개고기 시식회’를 벌였다. 맞은편에서 동물보호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개 식용 종식 촉구 집회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전국 3대 개시장으로 불린 성남 모란 개시장은 2016년 12월 성남시와 모란가축상인회가 환경정비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도살장을 없앤 데 이어 2018년 폐쇄됐다. 부산 구포가축시장도 부산시가 도시계획으로 개시장 부지를 수용하고 상인에게 생활안정자금 등 폐업보상을 진행해 2019년 문을 닫았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