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펑에 허리 숙인 옐런…미국서 비난, 중국선 옹호
지난 6∼9일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허리펑(何立峰) 중국 부총리를 만날 당시 수차례 허리를 숙여 인사한 장면을 두고 미국에서 비난 여론이 제기되자 중국이 그를 옹호하고 나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11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지난 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허 부총리를 만나 악수를 하면서 세 차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당시 허 부총리는 고개를 세운 채 악수하며 옐런 장관을 맞았다. 이 장면은 미국에서 논란이 됐다. 미 보수성향 매체인 뉴욕포스트와 폭스뉴스 등은 옐런 장관이 인사하는 모습을 두고 ‘외교적 실수’라거나 ‘의전상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옐런 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던 허 부총리가 뒤로 살짝 물러나는 모습을 부각했다. 허 부총리가 옐런 장관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참모를 지낸 브래들리 블레이크먼은 뉴욕포스트에 “미국 관리는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는다”며 “그가 마치 교장실에 불려간 것처럼 보였고 그것은 정확히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광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을 대할 때는 굽실거려서는 안 된다”며 “이 행정부 하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고 나약함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우리가 가진 효과적인 지렛대의 부족함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소속 존 바라소 상원의원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옐런 장관이 중국에서 여러 차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는 게 당황스러웠다”며 “그것은 이 행정부를 상징한다”고 꼬집었다.
미국 내에서 벌어진 이같은 논란에 중국 매체들이 가세해 옐런 장관의 행동을 두둔하고 나섰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까지 동원해 그를 옹호했다. 환구시보는 “옐런 장관의 과거 동영상을 보면 그것이 습관적인 동작임을 쉽게 알 수 있다”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 여론의 알레르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옐런이 중국에 비굴하게 아첨했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한 중국인은 별로 없다. 많은 중국인은 옐런이 겸손과 예의를 표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이는 그에게 가점이 될 뿐 아니라 미국과 미국 관리에 대한 중국 사회의 인식을 일정 부분 개선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에서 겸손은 존중받는 미덕으로, 겸손하게 예의를 지킨다고 해서 비난받을 사람은 없다”며 “옐런의 굽은 허리는 중국인들에게 미국 관리의 보기 드문 선의와 예의를 보여줬지만 미국 여론의 그릇된 풍조가 그것을 날려버렸다”고 주장했다.
중국 관영매체가 사설까지 동원해 미국 관료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옐런 장관이 미 행정부 내에서 대중 정책에 있어 상대적으로 온건한 인물이라는 중국 내 평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옐런 장관은 그동안 미국이 중국 상품에 부과한 고율 관세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고, 이번 방중 기간에도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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