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무력화’ 첫발 내디딘 네타냐후…전운 감도는 이스라엘
두 차례 추가 표결 거쳐 제정 강행할 듯
네타냐후 “민주주의 끝 아닌 강화” 강변
야권·시민단체 11일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회 절차에 돌입했다. 행정부가 내린 결정을 사법부가 뒤집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속전속결로 표결에 부친 것이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와 극우 연정은 이날 밤 네타냐후 내각이 추진하는 사법개편안 가운데 장관 임명을 포함한 행정부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걸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독회(讀會)한 뒤 곧바로 1차 표결을 진행했다.
이스라엘 의회는 총 120석으로,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 등 보수 연정이 64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날 표결에서도 찬성은 정확하게 64표로 집계됐다. 반대는 56표였다.
이스라엘 현행법상 해당 법안이 완전히 제정되려면 향후 두 차례 추가 독회와 표결을 거쳐야 한다. 극우 연정은 몇 주 내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네타냐후 총리는 표결 직후 “이는 민주주의의 끝이 아니라 강화”라며 “사법부의 독립성은 어떤 식으로든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표결에 오른 법안은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행정부의 중대 결정을 뒤집는 근거인 합리성(reasonableness) 판단 기준을 삭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행정부 결정이 법과 관례, 국민 정서 등에 반한다고 여겨질 때 대법원은 합리성 판단 기준을 앞세워 이를 제지할 수 있다. 영국과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대법원이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며 합리성 판단 기준의 폐지를 주장해왔다. 대법원은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착촌 확장 정책에 제동을 걸고, 병역 면제 등 초정통파 유대인에게 부여된 특권을 일부 없애는 등 네타냐후 총리와 사사건건 충돌해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과반을 얻는데 실패한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상대로 포섭하기 위해 내무·보건장관을 제안한 샤스당의 아리에 데리 대표가 탈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의 해임 명령으로 낙마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선출직이 아닌 판사가 국민 투표로 뽑힌 의원들의 활동을 과도하게 제어하고 있다”며 대법원의 합리성 판단 기준 삭제를 사법개편안에 포함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극우 내각은 야권의 반발을 의식해 대법원 판결을 의회 과반으로 무력화하고, 정부와 여당이 추천하는 인사가 법관선정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나머지 사법개편안 조항은 수정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NYT는 “이 분쟁은 더 종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정부와 더 세속적이고 다원주의적인 비전을 지닌 반대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데올로기 전쟁”이라고 평가했다. 또 2013년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자인 아논 밀천과 호주 사업가 등으로부터 20만달러(약 2억6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는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개편을 주도하는 상황이 타당하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11일부터 수도 텔아비브를 비롯한 이스라엘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열 계획이다. 이미 지난 9일 약 18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는 지난 1월 사법개편안 초안이 발표된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스라엘 최대 우방인 미국도 우려의 뜻을 표했다. 토마스 나이즈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에게 제발 속도를 조절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야권의 합의를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전날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 내각에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극단적인 의원들이 많다”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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