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나토 정상회의 하루 전 ‘스웨덴 가입 반대’ 철회 ···“이것이 에르도안 스타일”

선명수 기자 2023. 7. 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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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오른쪽)가 10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열린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에 제동을 걸어온 튀르키예가 나토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0일(현지시간)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스웨덴의 가입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는 데 합의했다. 이미 나토 가입 절차가 마무리 된 핀란드에 이어 스웨덴까지 나토에 합류하면서 북유럽 안보 지형이 격변할 전망이다. ‘몽니’를 철회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그 대가로 숙원이었던 F-16 전투기를 손에 넣게 될 전망이다.

스웨덴, 에르도안 대통령의 ‘몽니’ 철회로 32번째 나토 회원국 된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3자 회담을 열고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튀르키예 의회에서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3자 회담을 마친 뒤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합의 사실을 밝혔다.

1814년부터 200년 넘게 비동맹 중립국 노선을 유지해온 스웨덴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은 러시아 본토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까닭에 안보 불안을 느껴왔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그 수위는 더 높아졌다. 나토의 동진 저지를 명분으로 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오히려 나토의 추가 확장을 불러온 것이다.

나토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합류를 반겨왔다. 스웨덴은 러시아의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맞닿은 발트해를 핀란드 및 발트 3국과 함께 둘러싸고 있어 러시아의 발트해 영향권을 차단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스웨덴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스웨덴은 해군력이 강한 데다가 전투기까지 만들어 수출하는 국가로서 나토의 방위력 증강에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이언 브레진스키 연구원은 “스웨덴이 합류하면 발트해가 ‘나토의 연못’이 된다”며 “이에 따라 유럽 중북부에 안보와 군사적 안정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대 승자는 ‘거부권’ 지렛대 삼아 원하는 것 다 얻어낸 에르도안 대통령

그러나 스웨덴의 나토 가입 협상에서 최대 승자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다. 지난 4월 31번째 회원국이 된 핀란드와 달리 스웨덴은 그동안 튀르키예의 저지로 나토에 합류하지 못했다. 튀르키예는 스웨덴 정부가 쿠르드노동자당(PPK) 등 반튀르키예 세력을 용인한다는 빌미로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막아 왔다. 나토 회원국의 되기 위해서는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자국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조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이번에도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튀르키예의 결정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상회의 직전 입장을 바꿔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적지 않은 실리도 챙겼다. 이날 회담에서 스웨덴은 EU 회원국으로서 튀르키예의 EU 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EU-튀르키예의 관세 동맹 개편, 비자 면제 조치 등을 돕기로 합의했다고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전했다. 튀르키예가 요구해온 스웨덴 내 반튀르키예 단체에 대한 지원 불가 입장도 재확인했다.

이번 합의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튀르키예는 숙원이었던 200억달러(약 26조원) 규모의 미국 F-16 전투기 구매 승인도 받아낸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튀르키예에 F-16 전투기 수출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튀르키예는 과거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고 이웃 국가인 그리스 영공을 침범해 영유권 분쟁을 벌여 미국의 전투기 판매 금지 대상에 올랐었다. 11일 열릴 바이든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F-16 전투기와 관련된 추가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동맹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에 딴지를 놨다가 지도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입장을 바꾸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협상 패턴이 재연됐다며 “이 전략은 그가 뉴스 헤드라인을 독점하고 동맹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아슬리 아이딘타스바쉬 연구원은 “이게 에르도안의 협상 스타일”이라며 “그는 튀르키예에 F-16을 수출하겠다는 미국의 노력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유럽도 내놓길 원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튀르키예가 실제 EU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고, 에르도안의 EU 가입 언급은 “서방을 향한 조롱”이나 다름 없다며 “그는 가치에 대한 나토의 고상한 논의를 조롱하며 (이 협상을) 단순한 ‘기브 앤 테이크’로 끌어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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