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무기화 계속 골치인데… ‘자원 빈국’ 한국은 공급망법 처리 하세월
영향 미미하다지만…품목 확대시 불안
앞서 희토류·요소 등 수출 막아 힘 과시
멕시코·인니 등 격화하는 ‘자원 무기화’
‘95% 수입’ 韓은 공급망법 처리도 더뎌
최근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발표를 계기로 ‘자원 무기화’에 관한 우려가 다시 커졌는데, 한국은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급망 관련 법들이 국회 논의 과정에 묶여 있다. 우리나라가 주요 원자재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인데도 공급망을 둘러싼 각국의 자원 민족주의 행보 앞에서 국회가 너무 느긋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 자원 부국에 권력 주는 희귀 광물
11일 우리 정부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8월 1일부터 갈륨·게르마늄과 그 화합물을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할 방침이다. 다음 달부터는 중국에서 이들 금속을 수출하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고, 수출 기업은 해외 구매자에 관한 세부 사항을 보고해야 한다. 중국은 필요할 경우 수출 허가 검토를 국무원(중국 내각)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번 조치는 중국이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통제에 맞서려는 성격이 강하다.
갈륨은 차세대 전력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마이크로 LED 등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광물이다. 게르마늄은 반도체 공정용 가스 소재로 활용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2016~2020년 전 세계 갈륨 생산량의 94%와 게르마늄 생산량의 90%를 중국이 담당했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지만, 중국이 상황에 따라 통제 품목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은 위험 요인이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은 일본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영토 분쟁을 벌이던 2010년에도 희토류 수출을 막아 일본을 압박한 바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구동 모터, 풍력 터빈 등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을 비롯해 석유화학 촉매, 렌즈 가공 등에 주로 쓰인다. 테르븀·디스프로슘·에르븀·루테튬·네오디뮴·란타늄·세륨 등 주요 희토류 15종 모두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자원의 힘을 확인한 다른 나라들도 자원 패권화에 속도를 내는 추세다. 올해 2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리튬 탐사·채굴권을 국가에 귀속하는 법안을 공포했고, 칠레와 아르헨티나도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했다. 앞서 짐바브웨는 작년 말 자국에서 캐낸 리튬을 국내에서만 제련하도록 통제했다. 인도네시아도 니켈 원광 수출 금지에 나섰다.
◇ 광물 95% 수입해 쓰는 韓은 불안 증폭
문제는 글로벌 자원 무기화 행보의 역풍을 한국과 같은 자원 빈국이 고스란히 맞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21년 중국이 요소 수출을 금지했을 때 전국적으로 요소수 품절 대란을 겪으며 디젤 차량 운행에 차질을 빚었을 만큼 자원이 빈약한 나라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에서 쓰이는 광물 수요의 95%를 수입에 의존한다.
단순히 자원만 부족한 게 아니라 자원의 특정국 의존도도 높다. 예컨대 한국은 이차전지 양극재에 쓰이는 황산망간과 탄산망간 전부와 황산코발트의 97%, 수산화리튬 84%, 수산화코발트 69%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이차전지 음극재에 쓰이는 천연흑연(72%)과 인조흑연(87%) 등도 중국에 의존한다. 중국의 이번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가 큰 파급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한국 산업계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국내 이차전지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중 관계가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수출 통제 품목도 늘어날 수 있어 동향을 항상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며 “또 중국이 아닌 다른 자원 부국이 어떤 정치적 목표를 이루고자 특정 광물을 볼모로 삼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원자재 이슈는 기업이 각개전투로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 공급망 3법 중 2개는 국회서 하세월
정부도 상시화·장기화하는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작점과도 같은 공급망 3법 중 현재 국회 문턱을 통과한 법안은 ‘소부장 특별법 개정안’ 하나뿐이다.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안(공급망 기본법)’과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안(자원안보법)’ 등 나머지 2개 법안은 여야 논의 과정에서 정체 현상을 빚고 있다.
공급망 기본법은 공급망 안보를 위한 재정·세제·금융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공급망 컨트롤 타워인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설치해 범정부 차원에서 공급망 이슈에 대응하자는 내용이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해당 법안을 논의 중인데 감감무소식이다. 소위 관계자는 “다뤄야 할 내용이 많아 논의에 시간이 걸릴 뿐 여야 이견이 심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급망 기본법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당부한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정부는 공급망 위기 신호를 빠르게 감지해 대응하는 사후 시스템 마련에 주력하는 게 좋은데, 공급망 기본법은 사후 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라며 “대통령 직속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설치와 경제안보 품목 지정·지원, 공급망안정화기금 설치 등은 공급망 위기 시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법안인 자원안보법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산업부 산하 ‘자원안보위원회’ 설치와 자원안보 조기경보체계 마련, 위기 발생 시 핵심 자원 국내 반입조치 등의 내용이 담긴다. 이 법안 역시 여야 이견은 딱히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 고준위 특별법, 풍력법 등과 함께 묶여 진도가 느리다는 점이다. 산자위 관계자는 “연내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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