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가게 15년, 내년엔"…달라진 '초복' 풍경 콩국수·채식으로 보양

김예원 기자 조현기 기자 김기성 기자 2023. 7. 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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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오리고기부터 채식 위주 비건 보양식까지 '각양각색'
전문가들 "건강한 여름나기에 초점 맞춰 식단 재구성해야"
초복인 11일 서울 시내의 한 삼계탕 전문점에서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2023.7.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조현기 김기성 기자 = "내년부턴 개고기 장사를 접을까 고민 중입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서 15년째 보신탕 가게를 운영 중인 A씨의 말이다. 가끔 반대 집회가 열리는 것도 부담이지만 찾는 손님 자체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는 "개고기 대신 다른 음식을 판매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찾는 사람도 점점 줄어 이 사업을 유지하긴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인근에서 보양식 가게를 운영 중인 B씨는 "개고기 안 판 지 꽤 됐죠. 찾는 사람이 없어졌으니까"라며 코로나 19를 기점으로 개고기 판매를 중단했다고 털어놨다.

초복인 11일 오전에 만난 B씨는 과거에는 메뉴판 상단에 개고기 메뉴를 표시했었다고 한다. B씨는 "원래 이 일대 골목엔 보신탕 집이 5~6곳 있을 정도로 개고기를 판매하는 식당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 자취를 감췄다. 단골손님들도 물어만 볼 뿐 주문을 하지는 않는다"면서 "초복이 다가오면서 오리고기나 닭백숙 위주로 판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보양식 찾는 문화 여전…달라진 메뉴

복날 풍경이 달라졌다. 보양식을 즐기는 문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보양식'의 개념이 바뀐 모습이다. 유명 삼계탕 집 앞은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초복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반면 젊은이들은 편의점 간편식, 채소 보양식 등 다양해진 메뉴로 더위를 이겨내는 모습이다.

점심 무렵 방문한 서울 종로구의 오리고깃집은 초복을 맞아 영양을 보충하려는 직장인들로 붐볐다. 종업원 C씨는 "우리집 오리탕은 약재를 넣고 조리한 보양식"이라면서 "어제부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복날은 맞아 지인들과 가게를 방문했다는 D씨는 "닭은 평소에도 많이 찾으니까 오늘은 새롭게 오리탕 집에 왔다"면서 "입에 익숙한 음식 대신 새로운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려 한다"라고 덧붙였다.

외식 물가가 오르고 1인 가구가 늘면서 '간편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CU 등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연도별 여름 시즌 보양식 매출은 지난해 대비 30~40% 증가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E씨는 초복이 다가오자 편의점에서 삼계탕을 사먹었다. 음식점에서 먹기엔 가격이 부담스럽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에서 삼계탕을 음식점에서 사먹으려면 평균 1만6423원을 내야 한다.

E씨는 "양도 적당하고 닭죽 등과 함께 구매하면 할인 혜택도 있어 최근 시도해봤다"며 "주변에선 맛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하지만 생각보다 괜찮다. 다음 복날에도 찾아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복을 하루 앞둔 1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수박이 진열돼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수박 가격(소매·상품 기준)은 평균 2만1797원으로 1년 전보다 10.3% 올랐다. 2023.7.10/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 달라진 영양상태, 채식이 오히려 보양식

현대인들의 영양 상태가 양호해지면서 '보신'의 의미도 채식 위주의 건강식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초복이 다가오자 콩국수, 들깨두부 탕 등의 레시피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채식을 곳곳에서 독려하는 모습이었다.

20대 금모씨는 "환경오염, 주위 친구들의 권유로 비건 빵집이나 비건 식당 등을 방문하며 2~3년 전부터 채식 습관을 들이고 있었다"며 "초복을 맞아 이번 주말엔 친구들과 함께 비건 식당에 찾아가 건강을 챙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페스코(육류, 닭고기 등을 먹지 않음)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40대 남모씨는 "한국에서 보양식은 육류 위주 식단으로 꾸려진다. 한국에서 고기는 언제나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됐는데 복날마저 이같은 식단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여름에는 콩국수 등을 즐겨먹는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비건 전시회인 '비건페스타' 주최 사무국을 운영중인 박명희 비건페스타 대표는 "식품 기술이 발전하고 '보신'의 개념이 시원한 여름 나기로 옮겨가면서 대체육을 활용한 건강식, 수박 등 제철 과일 요리 등을 향한 관심이 늘어났다"며 "화장품, 의류 등에서 불던 비건 열풍이 최근엔 보양식으로도 옮겨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부족한 영양분을 채우기 위해 고단백·고열량 위주 식단을 추구했던 옛날과 달리 오늘날 '건강한 여름나기'라는 목적에 맞게 식단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정숙 백석문화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영양 상태가 양호한 오늘날엔 고열량, 고단백 섭취보다는 수분이 많고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식품이 진짜 몸 보양"이라며 "두부, 가지 요리 등은 소화가 잘되고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현대인의 여름철 보양음식으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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