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자녀들이 물었다···“당사자 원치 않는 공탁, 왜 하는 겁니까”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의 자녀들이 정부가 일본 기업을 대신해 피해를 배상한다며 법원에 낸 공탁을 두고 “피해자가 평생을 걸어 얻어낸 판결과 권리를 빼앗는 일”이라며 비판했다.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자녀·유족과 민족문제연구소는 11일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혔다.
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의 장남 이창환씨(67)와 장녀 이고운씨(64), 미쓰비시중공업·히로시마 공장 강제징용 피해자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장남 정종건씨(66)는 이날 외교부의 제3자 변제 공탁 이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나섰다. 양금덕 할머니의 자녀는 폭우로 기자회견에는 불참했지만 뜻을 같이했다.
정씨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것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3자 변제라는 이상한 방법으로 정부가 우리 법과 대법원 판결을 스스로 우습게 만들었다”며 “피해자 권리를 소멸시키려는 공탁은 전면 무효”라고 밝혔다.
이고운씨는 “저희 아버지는 일본 기업의 용광로에서 일하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며 “용서할 수 없는 일이고, 아버지는 정부가 공탁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철저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겼던 재판도 무마시키며 공탁을 건다는 것은 저희 아버지뿐 아니라 돌아가신 다른 분들까지 다시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이창환씨는 “대법원에서 판결한 그 권리를 정부가 끝까지 보장하고 지켜주기를 강력하게 원한다”고 했다.
기자회견 이후 이들은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과의 면담에서 ‘공탁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다. 심 이사장은 “여러분의 뜻을 잘 알겠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심 이사장과의 면담 내용과 관련해 “‘공탁을 왜 하는 거냐’ ‘왜 내 채권을 없애려고 하냐’는 이춘식 어르신 큰 아드님의 질문에 (이사장의) 답변이 없었다”고 전했다. 임 변호사는 “정부가 당사자나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어떻게든 피해자의 권리와 채권을 신속하게 없애려고만 하는 입장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일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하지 않은 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원고 4명에게 지급할 예정이던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개시했다. 광주지법·전주지법·수원지법 평택지원은 ‘당사자의 거부 의사가 분명하다’거나 ‘서류 미비’를 이유로 재단의 공탁 신청을 불수리 결정했다. 외교부는 이에 이의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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