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IT] 기술탈취 판례 (1) 두산인프라코어의 에어프레셔 기술탈취
‘두산인프라코어의 에어프레셔 기술탈취 판례’로 본 대기업의 하도급 업체 기술자료 유용 문제(서울고등법원 2020. 7. 22. 선고 2018누77120 판결 등)
“대기업과의 협업은 죽음의 키스(Death of Kiss)인가?”
‘애플의 부름은 곧 죽음의 키스다(When Apple Comes Calling, ‘It’s the Kiss of Death’)’. 지난 4월 22일,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위와 같은 제목으로 중소기업의 기술과 인력을 빼앗아 가는 애플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는 애플이 파트너십을 제안한 뒤 고액의 연봉을 미끼로 회사 직원들을 빼가고, 종국에는 특허 기술마저 빼앗아 갔다고 주장하는 한 스타트업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애플의 약탈적인 행태를 지적했습니다. 스타트업 대표는 “애플의 관심은 흥분되지만, 치명적인 키스와도 같다”며 애플의 장기적인 계획은 파트너사의 기술을 탈취해 가는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경고를 남겼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총 126건의 기술 탈취행위를 적발, 이 중 24개 기업에 대해 고발 및 합계 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합니다. 2016년 4월 6일, 범정부 차원의 중소기업 기술보호 종합대책 발표 후 공정위 등 관계부처에서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대기업에 의한 기술 탈취행위는 매년 20건이 넘게 적발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술탈취로 인한 실제 피해 건수와 피해액은 공정위의 통계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기업에 의한 기술탈취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는 기술자료 유용 행위입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원칙적으로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본인 또는 제삼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수급사업자로부터 기술자료를 제공받을 경우라도 해당 자료를 원사업자 본인 또는 제삼자를 위해 사용하거나, 제삼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는 기술 유용 행위로 금지됩니다(하도급법 제12조의3). 원사업자가 위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공정위는 해당 사업자에게 시정조치 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하도급법 제25조, 제25조의3).
그런데도, 대기업인 원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로부터 기술자료를 넘겨받아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하거나, 외부로 유출하는 불공정행위가 그동안 관행처럼 이뤄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기업의 사활을 걸고 많은 자원을 투입해 얻어 낸 기술자료라 하더라도 업무협조를 이유로 한 원청사업자인 대기업의 기술자료 제공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대기업의 신용과 신뢰를 믿고 소중한 기술자료를 제공하지만, 대기업의 진정한 의도는 해당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려고 했던 바, 이와 관련한 사례가 다수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두산인프라코어(現 HD 두산인프라코어)가 2016년~2017년 사이 기계 장비 오물 제거 및 정비용 에어 컴프레셔(Air Compressor)를 납품하는 이노코퍼레이션 등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빼앗아 간 사례가 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 사례는 2017년 공정위에서 기술 유용 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한 뒤 직권조사를 실시해 처음 제재 처분을 부과한 사건으로, 당시 공정위 조치 결과에 대해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공정위는 2018년경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8,200만원을 부과하는 한편, 관련 임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공정위 의결 제2018-339호 등).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년경 이노코퍼레이션이 에어컴프레셔 납품가격을 18% 인하하라는 제안을 거절하자, 에어컴프레셔 제작도면(설계도)을 제공받아 2016년~2017년 동안 제3의 업체로 하여금 동일한 에어컴프레셔를 개발하도록 지원했습니다. 또 두산인프라코어는 에어컴프레셔가 개발되자, 이노코퍼레이션과의 납품 계약을 전면 중단하고 신규 업체로부터 약 10% 낮은 가격으로 에어컴프레셔를 공급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두산인프라코어는 기술 유용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가 부과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에 대해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심리 끝에 두산인프라코어의 기술 유용 사실 자체는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과징금 산정의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3억8,200만원 중 3억6,200만원을 취소한다고 판결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8누77120, 대법원 2020두47021). 이에 따, 공정위는 올 2월경,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한 과징금을 재산정하기 위한 전원회의를 열어 과징금 액수를 3억원으로 확정함으로써 사건이 종결됐습니다.
위와 같은 두산인프라코어 사건 결과에 대해, 일각에서는 해당 중소기업이 입은 피해와 대비했을 때 공정위에서 부과한 과징금 액수가 지나치게 적어 대기업의 기술탈취를 근절하기 어렵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최근 지속적인 정책 마련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대기업의 기술 탈취행위를 막기 위해서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강화하는 등(현행 3배에서 5배까지 강화) 보다 강경한 억제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도 국정과제로 선정된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을 위해 기술 유용 행위에 대해 부과하는 정액 과징금 한도를 1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상향하는 등 중소기업 기술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실효성 있는 법 제도가 마련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안전하게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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