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후 ‘판 커진’ 나토, 오늘부터 이틀간 정상회의
러시아와 불과 127㎞ 떨어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31개 동맹국과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11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막을 올렸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선 ‘대러 연대’로 존재감이 커진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 기간 나토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특히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관한 합의가 어느 수준까지 이뤄질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정상회의장으로 입장하면서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관련해 명확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식 나토 가입 시점은 전쟁 이후로 하더라도 나토가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수용하기로 확약하고 분명한 일정표를 제시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12일 회의에 참석해 직접 담판에 나설 전망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경제적·인도적 지원과 대러시아 제재에서 거의 일치된 행보를 해온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관해서는 각기 생각이 다르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가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독일 등은 신중 기류다. 반면 영국, 폴란드 등 동유럽 회원국은 우크라이나의 요구대로 나토 가입을 확약하고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둘러싼 나토 내부의 이견과 균열이 공개 표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참석 예정인 12일 첫 나토-우크라이나 평의회에서 논쟁이 불거질 수 있다. 나토 내부의 관련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한 고위 외교관은 워싱턴포스트(WP)에 우크라이나는 나토 정상회의 결과 문서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초청됐다’는 문구가 담기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확약하는 것이 러시아의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집단안보 체제인 나토 헌장 5조가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해 ‘자동개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전쟁에 휘말려 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에 대해선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가 거쳐야 하는 절차를 면제할 가능성이 커졌다.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나라는 자국의 정치, 국방, 경제 등을 나토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개혁하는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에 참여해야 한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10일 트위터에서 “나토 동맹들은 우크라이나의 가입 절차에서 MAP를 제거하기로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앞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정상회의 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MAP를 면제하는 내용이 담긴 패키지를 회원국들에 제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MAP가 면제된다고 해도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민주주의 관련 개혁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대신 언급한 ‘이스라엘식 안전보장’의 수위도 관심사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정식 동맹은 아니지만 무기 및 군사훈련, 기밀정보 공유, 경제 지원 등을 전폭적으로 받아왔다. 유의미한 약속이 나온다면 나토 동맹국이 비회원국에 대한 안보를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2일 리투아니아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별도 양자 회담을 할 예정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 정상들이 우크라이나의 가입 일정표를 제시해 줄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정상회담 선언문을 보았다면서 “우크라이나가 빠진 특정 문구가 논의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일정표가 정해지지 않는 것은 전례 없고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러시아에는 테러를 계속할 동기가 된다”며 “불확실성은 나약함이다. 나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냉전 종식 후 존재감이 미미했던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2년 연속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4개국(AP4) 정상을 초대하며 나토의 위상과 영향력 확장을 꾀하고 있으며, 방위비 지출 가이드라인을 현행 국내총생산(GDP) 대비 2%에서 ‘최소 2% 이상’으로 확대하는 개정도 이뤄질 전망이다. 12일 열릴 AP4 간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북한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 현안이 어느 정도로 논의될 지 관심이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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