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일가’ 특혜 막을 해법, 원희룡도 주장한 ‘부동산 백지신탁’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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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의 핵심은 ‘공직자’나 ‘공직자에 준한 인사’의 특혜 여부다. 종점이 강상면으로 바뀌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가 큰 개발 이익을 얻는 게 아니냐는 게 이번 논란의 불씨가 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야권의 의혹 제기가 타당하지 않다며 사업 백지화를 최근 선언하면서 1조8천억원짜리 국책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이런 논란을 없앨 방법은 없을까? 있다. 공직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백지신탁 제도’를 도입하면 된다.
■고위공직자 백지신탁, 한국은 ‘주식’만 적용
공직자 백지신탁은 공직자의 재산을 제3자에게 맡겨 공적 업무와 사적 이익 간 이해 충돌을 방지하는 제도다. 한국은 2005년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해 고위 공직자 ‘주식 백지 신탁제’를 도입했다. 참여정부 당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삼성전자 주식 및 스톡옵션 보유 논란이 불거진 게 계기다.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여·야는 총선 공약으로 일제히 주식 백지 신탁제를 내걸었다.
법 개정 이후 고위 공직자의 주식 보유가 까다로워졌다. 현재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차관을 비롯한 1급 이상 공무원(기획재정부 금융 담당 및 금융위원회 4급 이상 공무원 포함) 등은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보유한 주식 합계액이 3천만원을 초과하면 2개월 안에 주식을 직접 매각하거나 증권사 등 금융회사와 백지신탁 계약을 맺어야 한다. 공직자는 위탁한 주식의 관리·운용·처분에 관여할 수 없다. 금융사도 수탁 받은 주식을 60일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
주식을 계속 보유하려면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가 직무 관련성 없는 주식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공직자의 주식 보유가 편향된 정책 결정 등 논란을 낳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셈이다.
■원희룡도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 주장
주식과 달리 부동산은 백지신탁 대상에서 제외됐다. 2005년 공직자윤리법 개정 당시 함께 논의됐으나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백지 신탁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집값이 뛰고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가 논란될 때마다 정치권이 불러내서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를 선언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원 장관은 2007년 국회의원 부동산 백지신탁 도입을 주장하고, 2020년에도 이 제도의 도입을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당론으로 채택하자고 촉구했다.
가장 최근인 2021년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며 부동산 백지 신탁제 도입이 다시 논의됐다. 다만 당시 국회를 통과한 ‘엘에이치 투기 방지법’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국회에 법안 계류…1주택 제외 매각해야
2020년 발의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보면 부동산 백지 신탁제의 적용 방식을 미리 살펴볼 수 있다.
신정훈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기존 고위 공직자의 재산 백지신탁 대상을 부동산 및 국토부 공무원으로 확대하는 게 뼈대다. 주택은 본인이 직접 거주하는 집 한 채만 소유를 허용하고, 건물·토지 등은 인사혁신처 산하 부동산백지신탁 관리위원회가 실소유 여부를 인정해야만 계속 보유할 수 있다. 이외 모든 부동산은 60일 안에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 신탁 계약을 맺은 부동산 자산은 180일 이내(1회 90일 연장) 처분을 마쳐야 한다. 공직자는 신탁 시점의 감정평가액과 법정 이자만 돌려받는다.
같은 당 윤재갑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직무 관련성이 없는 부동산의 경우 주택도 한 채 이상 보유 가능한 게 가장 큰 차이다. 직무 관련성은 부동산 정보 접근성과 영향력 행사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따지도록 했다.
이를 두고 정성희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1주택만 허용하고 이외에는 처분하도록 강제하는 신정훈 의원안은 ‘이해 충돌 방지’라는 입법 목적에 비해 기본권 제한의 범위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며 “윤재갑 의원안의 경우 직무 관련성 심사를 통해 이해 충돌 여부를 우선 검토하게 해 재산권 침해 정도를 낮추고 개별·구체적인 상황을 반영하려는 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미국은 규제와 인센티브 함께 제공
찬반은 갈린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의 주식 백지신탁을 의무화한 공직자윤리법의 재산권 침해, 연좌제 금지 및 평등 원칙 위배 등 위헌성을 따져달라는 서울고등법원의 위헌 법률 심판 제청에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직무 관련성 있는 주식을 백지신탁하게 해 공직자의 이해 충돌을 방지하는 건 공익을 위해 정당하다는 의미다.
다만 헌재는 이 판결에서 부동산의 경우엔 처분이 쉽지 않고 주거 등 개인 생존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처분을 강제하면 기본권 침해 소지가 주식보다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성근 한국행정연구원 공공리더십·갈등관리연구실장은 “부동산 백지 신탁제의 적용 대상 공직자 범위가 너무 넓고, 우수한 민간 인재의 공직 채용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제도에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정연주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2021년 펴낸 ‘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에 관한 헌법적 고찰’ 논문에서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하며 공직 포기, 다른 직위로의 변경 신청 등 대안 가능성을 고려하면 (부동산 백지 신탁제의) 규제가 사유 재산 제도의 부정이라 보기 어렵다”며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그 추진 목적에 비춰 재산권 보장, 비례·평등의 원칙 등 헌법상 위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2015년 한국공법학회의 학술지 ‘공법연구’에 실린 ‘미국법상 공직자의 주식백지신탁제도에 관한 고찰’ 논문을 보면, “미국은 현금, 주식, 채권, 뮤추얼 펀드, 부동산을 백지신탁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면서 “국내 고위 공직자의 재산 증식이 부동산을 통해 이뤄진 부분을 부인하기 어려운 만큼 우리도 부동산, 채권 등의 백지신탁에 관한 논의와 도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제안했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공직자 백지신탁 제도를 도입한 미국은 특정한 경우에만 주식 등 재산을 처분하게 하고, 매각 재산의 소득세 면제, 자산 분산 보유 등 당근과 다양한 선택지를 함께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재산 매각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와 다르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엘에이치 사건 이후 공직자가 보유한 부동산 관련 규제가 강화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부동산 관련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공직자 등으로 한정해 부동산 백지 신탁제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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