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동굴 고립에서 생환한 영웅들이 모인 이유…“리더십 탁월했던 주장 추모”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박종현 2023. 7. 11. 13: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풍 기분으로 찾았던 동굴에서 고립
산소부족, 홍수로 동굴 수위 높아져
미얀마 난민 20대 코치, 선수들 챙겨
특수부대·다국적 구조대 투입해 구조
주장은 생환 이후 영국 유학 중 숨져
5년 만의 추모·기념식에서 의미 새겨

“많은 분들의 걱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희들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팀의 주장이 함께 하지 못해 슬프지만, 살아가면서 갚겠습니다.”

5년 전 동굴에서 고립돼 생사를 함께했다가 고립 17일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했던 태국 젊은이들이 다시 모였다. 이들은 태국 유소년 축구팀 코치와 선수 출신이었다. 생환 5주년을 기념하고, 이제는 세상을 떠난 당시 주장을 추모하기 위해서 사고 현장에 모인 것이다.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은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 도우면서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당시 코치를 제외하면 어린 소년이었던 이들은 어느새 10대 후반의 청소년이 돼 있었다. 10일 태국 언론은 이를 담백하게 전했다.
2018년 7월 태국 탐 루엉 동굴에서 생환했던 선수들이 10일 생환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경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치앙라이=AFP연합뉴스
◆ 종유석 물, 명상 등으로 버텨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인 2018년 7월 10일. 태국 북부에서 전해진 소식에 세계 곳곳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태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 페이스북에 치앙라이주 ‘탐 루앙’ 동굴에 고립됐던 코치와 어린 선수 모두를 구했다는 소식을 올린 직후였다. 태국 언론 보도 중에는 “코치와 ‘야생 멧돼지’ 어린 전사 12명이 동굴에서 살아나왔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감동이 지구촌을 덮었다.

야생 멧돼지는 유소년 축구팀의 명칭이었다. 태국어로 ‘무 빠’라고 한다. 코치와 어린 선수들은 그해 6월 23일 훈련을 끝내고 동굴에 들어갔다. 일종의 소풍이고, 훈련이었을 것이다. 어린 선수 대부분은 태국 국적이었으며, 코치와 선수 3명은 미얀마 난민이었다. 관광 목적의 동굴 탐험은 폭우를 만나면서 고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과정은 상상을 안 해도 짐작 가능하다. 음식은 없었을 것이며, 어둠과 두려움이 동굴 안을 지배했을 것이다. 다행히 13명이 함께 있다는 심리적 의지가 이들의 어려움에 한줄기 빛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것이었지만, 이들은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며 버텼다. 서로을 끌어안고 체온을 유지한 것도 큰 힘이 됐다. 이와 함께  코치는 암흑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선수들과 명상을 하며 견딘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생환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태국 유소년 축구 선수들이 지난 2월 숨진 주장 두앙페치 프롬텝의 영정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치앙라이=AFP연합뉴스
◆ 고립 17일만에 모두 기적같은 생환

7월 2일 고립된 이들에게 극적인 희망이 계기가 마련됐다. 구조대가 수색에 나선 가운데 영국인 잠수부 2명이 이들을 발견한 것이다. 코치와 어린 선수들은 동굴 입구에서 4km 되는 안쪽 지점에서 발견됐다. 고립 상황이 드러났다고 해서 동굴 탈출이나 구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폭우로 동굴의 수위는 높았으며, 산소 부족 문제도 심각했다. 태국 소방구조대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태국은 물론 미국과 영국·호주 등 다국적 구조대 100여명이 투입됐다. 현장에는 연인원 1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와 구조대가 참여했다. 

다국적 구조대와 전문가들은 폭우로 동굴 내부 수위가 높아진 점에 주목했다. 구조 당국은 배수용 펌프를 이용해 동굴의 수위를 낮췄다. 산소탱크 수백 개도 동굴 안으로 투입됐다. 불어난 물 때문에 잠수와 수영을 통하지 않고는 고립된 이들이 동굴을 탈출하기 어렵다고 봤다. 구조대는 코치와 선수들에게 수영과 잠수 방법을 가르쳤다. 통로는 성인 1명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았다. 그만큼 여건이 좋지 않았다. 동굴 내부의 산소가 부족해 네이비실 대원이 구조 도중 숨지기도 했다. 외신은 완전 구조에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기대와 비관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본격적인 구조 작업이 전개됐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현장을 함께하는 듯했다. 구조대원과 선수들은 로프에 서로 연결됐다. 이 상태로 잠수와 수영, 걷기와 등산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발견 엿새 만에 첫 구조 소식이 들려왔다. 구조 첫날인 7월 8일 4명이 구출됐다. 그해 7월 2번째 일요일이었다. 이튿날(9일) 5명, 그 다음 화요일(10일) 마지막 날에 5명이 동굴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10일 ‘동굴 생환’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들이 자신들을 구조하다가 숨졌 태국 해군 특수부대원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치앙라이=AFP연합뉴스
◆ 생환에 지구촌 감동…5년만의 기념식

완벽한 기적의 구출이었다. 본격 구조 개시 사흘 만에 고립 상태가 완전 해소된 것이다. 구조 현장을 지킨 치앙라이 지사의 표현대로 환상의 동굴 생환이었다. 구조대의 전문성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코치의 탁월한 보살핌과 소년 선수들의 용기가 어우러진 성과였다. 세계는 환호했다.

생환 이후 20대였던 미얀마 난민 에카폰 찬타웡 코치와 선수 3명은 태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특별귀화였다. 선수들은 유스올림픽에 참가하고, 여러 외국 방송에도 출연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기적의 공간으로 거듭난 탐 루앙 동굴은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다음해에는 태국의 국립공원으로 거듭나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장소가 됐다. 
태국 북부 동굴에서 고립됐다가 생환해 5년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10일 고립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치앙라이=AFP연합뉴스
코치와 선수들의 생환은 잠시나마 태국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보다 4년 전인 2014년 5월 발생한 군사쿠데타로 우울함이 극에 달했던 태국의 분위기가 일순 감동의 물결로 뒤덮인 것이다.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2018년 구조된 이후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떠났던 두앙페치 프롬텝이 지난 2월 숨진 것이다. 동굴 고립 당시 주장이었던 프롬텝은 영국에서 사고를 당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사고 현장에 모인 이들은 탁월한 리더십을 자랑했던 프롬텝을 간절히 간절히 추모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