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 내치는 ‘괴담 정치’[시평]

2023. 7. 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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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
정치인은 정치시장의 거간꾼
국민에 꼭 필요한 난제는 회피
지역감정과 편 가르기에 몰두
광우병 세월호 탈원전 오염수
말도 안 되는 구호로 국가 발목
파괴적 경쟁→건설적 경쟁 절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치인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정치제도 안에서 집단 간의 이해관계 조정으로 갈등을 제거하고 사회 협력을 강화해서 사회가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게 만드는 ‘거간(居間·intermediation)’ 서비스를 한다.

정치인은 정치시장에서 이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정치인들도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power)’을 획득하려고 경쟁한다. 당연히 정치시장도 다른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인들을 ‘거간꾼(middleman)’이라 하면 강력히 반발하겠지만, 그 본질적 기능을 부인하긴 어렵다.

우선, 정치인은 자신이 생산한 제품이 아니라 남이 생산한 아이디어와 정책을 포장·진열·판촉하고 실행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시장의 유통 경로에서 도소매업자, 토지·주택 거래에서 부동산 중개업자가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정치인들은 정의(justice)를 내세우지만 권력에 도움되지 않으면 절대 안 움직인다. 기업인이나 중개인이 이윤에 목을 맨다고 ‘장사꾼’ ‘거간꾼’이라 비하하지만, 정치인도 권력 획득에 사활을 걸고 이 경쟁에 유익할 ‘이슈(상품)’와 정치적 지대(rent)에 주의를 집중한다.

국민에게 진짜 유익한 일은 정치인에게 대개 이익 없이 비용만 많거나, 대단히 해결이 어려워 퇴출 내지 패배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반면, 갈라치기·괴담·가짜뉴스·흑색선전은 저렴하면서 책임지지 않고, 요행수로 걸려들면 권력 획득과 강화에 더없이 좋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유익한 일들보다 하찮거나, 백해무익한 이슈들을 가지고 다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때때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주저 없이 한다.

건국 이래, 정치인들은 처음에는 영남과 호남으로, 다음에는 민주화 세력과 반(反)민주화 세력으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데 온갖 힘을 썼다. 그것이 정치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므로, 말로는 지역주의 타파, 갈라치기 배격을 외쳤으나, 필요하면 어김없이 여야 불문하고 지역감정과 편 가르기에 불을 질렀다.

나라가 민주화되고 선진국이 됐는데 여기에 괴담이 더해졌다. 광우병, 세월호 침몰 원인과 책임, 사드(THAAD) 전자파, 탈원전, 일본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슈들을 가지고 정치시장에서 모든 국정의 핵심 이슈들을 집어삼키고 정부를 흔들거나 무너뜨리기도 했다.

과연 이런 괴담들에 대한 정쟁이 국익과 공익에 도움이 되는가? 그런데도 거리에는 정치지도자라는 인사들이 피켓을 들고 선동하고, 지지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일을 방해하며 떼로 몰려다니고, 온갖 미디어에서는 이른바 ‘논객’이라는 인사들이 이에 핏대를 올린다. 그래서 거리와 미디어는 이미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이리’ 상태다.

경제학자 토머스 그레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고 했다. 지금의 정치적 경쟁은 바로 이 금언이 적용될 단적인 사례로 보인다. 정치시장에서의 이 ‘파괴적 경쟁(destructive competition)’이 즉각 멈춰지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우리에겐 조선이 건국 200년 만에 ‘사색당쟁’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초토화되고, 이후에도 반성은커녕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로 가렴주구를 일삼아 국권을 일본에 넘긴 굴욕의 역사가 있다. 임진왜란 전후로 퇴계와 율곡, 이순신과 권율, 류성룡, 이항복, 이덕형 등 저명한 정치인과 장군들이 있었으나, 정치판의 난장으로 인해 전쟁의 피폐와 조선이 궁극적 멸망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음을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인과 그들이 장악한 정부와 국회는 소모적·분열적 정쟁을 멈추고 전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핵심 현안 해결 경쟁에 나서야 한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 이들 과제의 해결 역량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는 건설적 경쟁(constructive competition)으로 속히 바꿔야 한다.

더 늦으면 지금의 파괴적 경쟁이 전쟁의 피폐와 국권의 피탈을 겪은 조선의 치욕을 되풀이할 수 있다. 그러면 정치인들의 자유로운 권력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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