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진실[오후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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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시가 끝난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의 '화가의 벗: 시대공감'전에서 작은 공간이 오래 발길을 붙들었다.
'은지화의 방'.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표랑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박고석의 판잣집에서도 그렸다.
1955년 전시회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에 근무했던 아서 맥타가트가 인상 깊게 보고 구입해 기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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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시가 끝난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의 ‘화가의 벗: 시대공감’전에서 작은 공간이 오래 발길을 붙들었다. ‘은지화의 방’. 동시대의 화가 윤중식, 박수근과 함께 이중섭(1916∼1956)이 담뱃갑 은박지(銀箔紙)에 새긴, 아니 그린, 손바닥보다 작은 8×15㎝ 안팎의 작품들이 걸렸다. 비극과 궁핍의 시대였던 6·25전쟁 피란기인데, 천진무구한 아이와 피안(彼岸)의 가족을 그렸다. “은종이에 송곳으로 선을 북북 그은 위에 암비(엄버·갈색 안료)색을 칠한 뒤 헝겊으로 닦아내면 송곳 자국의 암비 색깔이 남고 여백은 광휘로운 은색 위에 이끼 낀 듯 은은한 세피아(짙은 갈색)가 아롱지는 중섭 형의 그림은 가장 창의적이요, 독보적 마티에르(재질감)다”(화가 박고석·1917∼2002).
1952년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다시 부산에 온 뒤 일본인 부인과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무척 외로웠다. 그걸 안고 시대의 고통을 넘게 해준 건 오직 그리는 것뿐이었나 보다. 주요 작품들이 이 시기 전후에 그려졌다. 40세에 무연고 사망자로 방치된 이중섭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러준 오랜 벗, 시인 구상(1919∼2004)은 “중섭은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고 했다.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표랑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박고석의 판잣집에서도 그렸다. 미군 부대 쓰레기장에서 수거한 담배 은박지가 캔버스였다. 배고픈 밤이면 박고석의 아내가 수제비를 끓였다. 땔감이 귀했고, 돌돌 만 은박지가 불쏘시개였다. 이중섭의 은지화들이 활활 타들어 갔다. “그땐 몰랐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럽고 값비싼 수제비였다”(미술 평론가 황인).
남아 있는 이중섭의 은지화는 300점 정도인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도 3점이 있다. ‘낙원의 가족(Family in Paradise)’ ‘요정의 나라(Fairyland)’ ‘신문 읽는 사람들(People Reading the Newspaper)’이란 제목이 붙여졌다. 1955년 전시회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에 근무했던 아서 맥타가트가 인상 깊게 보고 구입해 기증했다고 한다. 이중섭은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라고 했다. 은지화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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