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통상정찰 트집잡아 도발명분…한미, 도발 가능성 예의주시
전승절 앞두고 내부결속·도발명분 축적…한미 엄중 경고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이상현 김지연 기자 = 북한이 미군의 통상적인 공해 상공 정찰비행을 문제 삼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것", "매우 위태로운 비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말폭탄'을 투하했다.
미군의 통상적인 정찰비행을 문제 삼은 것은 이를 빌미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끌어올려 내부 결속을 꾀하고 도발의 명분을 쌓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오빠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발표한 담화에서 남측을 '대한민국'으로 언급한 데서 이제 남한을 '별개의 국가'로 보겠다는 입장이 읽힌다.
한미는 북한의 의도적 트집 잡기에 엄중하게 경고하는 한편, 말폭탄이 실제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틀새 3번 경고…의도적 긴장 조성하며 도발 명분 쌓기
북한은 미군의 통상적인 정찰 활동을 트집 잡아 이틀 사이 세 건이나 비난 담화를 발표했다.
첫 번째 담화는 10일 오전 북한 국방성 대변인 명의로 발표됐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담화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10일 밤과 11일 오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이달 말 북한이 크게 기념하는 정전협정일(전승절)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해 내부 결속을 꾀하는 한편, 본격적인 도발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6·25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부터 전승절로 칭하는 정전협정체결일인 7월 27일까지 한 달간은 북한이 정한 '반미공동투쟁월간'이다.
여기에 오는 27일은 전승절 70주년으로 북한이 중요하게 기념하는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해당해 행사 의미를 최대한 키울 개연성이 크다.
이에 미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담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그 책임을 미국에 전적으로 돌림으로써 향후 혹시 모를 도발에 대비해 미리 명분을 축적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찰활동은 이번만 있었던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했던 것인데 굳이 이 시기에 문제 삼는다는 것은 이를 빌미로 미국에 도발해서 얻으려고 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주 대규모 국제회의 일정을 의식해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 개진하는 여론전을 펼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11~12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13~14일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잡혀있다.
안보 이슈가 논의되는 나토 무대에서 한반도 사안을 부각하는 한편 최근 미국과 중국의 해빙 분위기를 경계하며 중국에 재차 '신냉전 구도'를 주입하며 신호를 보내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여정 '대한민국' 언급…'두 개의 한국'으로 가나
김 부부장의 담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남쪽을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언급한 점이다.
'대한민국' 또는 '한국'은 그동안 김 부부장의 담화에서는 물론 그 밖의 북한 주요 매체나 공식 문건에서 사실상 사용하지 않은 표현이다. 북한은 그간 남측을 보통 '남조선' 또는 비난할 경우 '남조선 괴뢰' 등으로 지칭해왔다.
이는 우리가 북한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잠정적인 특수관계 대상'으로 규정하듯 북한도 남측을 '같은 민족' 또는 '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김 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발표한 담화에서 직접 대한민국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한이 이제 남측을 '별개의 국가'로 보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한반도 정세 악화와 함께 대남·대미 협상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북한의 정책이 협력을 통한 관계 변화의 모색에서 '적대적 공존'에 무게를 둔 '두 개의 한국'(Two-Korea) 정책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김여정의 대한민국 언급은 최근 북한이 보이는 2국가 체제 정책의 차원"이라며 "이미 이번 사안을 두고 북미 간 문제라고 규정한 것처럼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과 협의하지 않겠다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묻어난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처음에는 미군 정찰기가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했다고 말을 바꾼 점도 주목된다.
국제법상 영해(12해리)가 아닌 EEZ는 통상 무해통항권(선박이 연안국의 안전과 질서를 해치지 아니하는 한 자유로이 항해할 수 있는 권리)이 인정되는 공해이기 때문에 북한이 미군 정찰기의 EEZ 진입을 문제 삼은 것은 국제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로 미뤄볼 때 북한은 경제적 권리에 대한 개념인 EEZ를 방공식별구역(ADIZ)과 유사하게 운용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북 위협에 엄중 경고…실제 도발 가능성 예의주시
우리 군은 북한의 거듭된 위협에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했다.
전날 오전 북한 국방성 대변인 명의로 미군 정찰기가 자신들의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했고, 김여정 부부장의 'EEZ 상공 침범' 주장에 대해서는 "의도적 긴장 조성"이라며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북측에 있다"고 엄중 경고했다.
이와 함께 북한이 말폭탄을 투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북한 인민군이 도발을 준비하는 기미는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북한이 이른바 '기묘하고 영활한 전술'의 일환으로 기습적인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기묘하고 영활한 전술'이란 1975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10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제시했다는 5대훈련방침 중 하나로 '적이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격하라'는 의미다.
동해로 한미의 시선을 돌린 다음 '성동격서' 식으로 전혀 다른 곳에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빼놓지 않고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것이 군의 각오다.
한편, 미국 국방부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비난에 대해 "북한의 그런 발언이나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언제나처럼 국제법이 허용하는 모든 곳에서 동맹 및 파트너들과 함께 안전하고 책임감 있게 비행하고 항행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 영공 등에서 비행한 사실이 없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그렇다"며 "다시 말하지만, 우린 국제법에 따라 항상 책임감 있고 안전하게 작전한다. 따라서 그러한 비난은 비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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