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맨' 손성빈이 필요 없는 '셀프 방범' 외인투수, 심판들이 주목한 건 딱 하나 "ML이라고 다를 건 없다"

정현석 2023. 7. 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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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IA와 KT의 경기. 1회말 무사 1루 산체스가 독특한 동작으로 1루 주자를 견제하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7.9/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좀처럼 못 봤던 투수의 독특한 행동. 새 외인은 그렇게 강렬한 데뷔전을 치렀다.

KIA 타이거즈 대체 외인 투수 마리오 산체스(29). 9일 KT전에 선발로 데뷔전을 치른 그는 첫 무대부터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화제성 하나 만큼은 최고였다.

실력도 출중했다. 150㎞에 미치지 못하는 공으로도 현란한 볼끝의 제구된 변화구를 구사하며 정타를 피했다. 무엇보다 실전형이었다.

KBO 무대 통과의례인 퀵 모션을 알아서 준비해 왔다.

통상 새 외인투수의 국내 무대 적응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는 느린 퀵 모션. 구위를 중시하는 외인투수 상당수가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리그를 낮춰 보는 성향이 강한 선수일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하지만 KBO 리그는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약점이 잡히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무너뜨린다. 이렇게 짐을 싼 선수가 외인 제도 도입 첫해였던 지난 1998년 이후 수두룩 했다.

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IA와 KT의 경기. 6회말 2사 1루 황재균을 삼진으로 잡은 산체스가 환호하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7.9/

산체스는 반대다.

알려주기 전에 주자 묶는 법을 아예 연구해 왔다.

무릎을 굽힌 채 상체를 1루주자를 향해 크게 비틀며 돌려 노골적으로 쳐다본 뒤 세트 포지션에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1루 견제를 하기도 하고, 견제 없이 투구에 들어가기도 했다. 때로는 주자를 쳐다보는 동작 없이 바로 1루 견제를 하기도 했다.

1루 주자로선 헷갈릴 수 밖에 없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결국 KT 주자들은 산체스를 상대로 단 하나의 도루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1회 김민혁의 도루 실패 하나만 남았다.

상무 전역 후 메이저리그 정상급 수준의 팝타임으로 100% 도루 저지율(도루성공 0, 도루저지 4)을 자랑하는 롯데 자이언츠 포수 손성빈 같은 레이저 송구의 포수가 필요 없는 '셀프 방범' 투수다.
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IA와 KT의 경기. 6회말 2사 1루 이강철 감독이 산체스의 1루 견제 동작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7.9/
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IA와 KT의 경기. 6회말 2사 1루 이강철 감독이 산체스의 1루 견제 동작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7.9/

상대 팀은 환장할 노릇이다. 뭔가 이상한 데 룰에 위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KT 이강철 감독이 벤치에서 나와 심판진에게 산체스의 독특한 1루 주시 동작에 대해 항의를 했다. 심지어 타석의 황재균도 타이밍이 흐트러진 듯 산체스를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논란의 새 외인투수. KBO 허 운 심판위원장이 심판위원들의 견해를 정리했다.

10일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허 위원장은 "룰은 메이저리그라고 다르지 않다. 미국은 주심의 판단사안(재량권)이 많다보니, 심판이 볼 때 기만이다 아니다를 많이 인정해주는 문화고, 우리는 규정에 어긋나면 안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전제했다.

허 위원장이 강조하는 핵심은 '연속성'이다. "우리(심판진)도 산체스 투구모션을 확인했다. 1루를 한번 보고 앉았다가 세트모션에 들어가는 건 연속동작이라면 상관이 없다. 룰에서도 인정이 되는 부분이다. 중간에 변경하거나 중지하면 안되는 것이 룰이다. 우리 투수들은 (주자를 주시하는 과정을) 짧게 하고, 산체스는 크게 하는 차이다. 못 보던 장면을 보니까 '뭐야?' 하는 것 뿐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앉았다가 일어서는 투수가 없어 논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속동작은 끊어지지 않으면 괜찮다.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하면 투 모션이고, 속이려는 행위다. 그건 안된다. 연속동작은 짧게하는 거나 길게하는 거나, 1루를 보는거나, 앉는 거나 다 같은 매커니즘"이라고 정리했다.
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IA와 KT의 경기. 4회말 투구를 앞두고 심판진이 산체스에게 투구 동작에 대해 주의를 주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7.9/

다만, 와인드업 과정에서 이중 키킹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 위원장은 "와인드업에서 자유족을 연속동작으로 던지다가 딱 서면 안된다. 그래서 심판들이 주의를 줬고, 그 뒤로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영리함도 있고, 상황에 따라 투쟁심도 있는 선수. 만만치 않은 새 외인이 KBO 리그에 상륙했다.

생소함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그 역시 KBO리그의 '현미경 분석'이란 검색대를 안전하게 통과해야 한다. 홀딱 벗겨져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 진정한 생존의 완성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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