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초과학 성과가 10년 만에 산업 되는 시대…꾸준한 연구가 경쟁력”
미국, 기술패권 경쟁 한창에 기초과학 투자 선언
노 원장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기초과학에서 나와”
“한국도 크게 다를 바 없어, 기초과학 투자해야 경쟁서 생존”
“기술패권 경쟁 속 기초과학자 역할, 중요성 커져, 사명감 가져야”
윤석열 정부 들어 주목받는 과학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양자 분야다. 윤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양자는 접근하기 어렵고 난해한 기초과학 분야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양자를 미래 먹을거리로 꼽으며 정부 차원의 투자가 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양자 분야 선도국과 기술 격차가 작지 않다. 대표적인 양자 과학기술 응용 분야인 양자컴퓨터에서 한국과 선도국의 기술 격차는 7년 정도로 평가된다.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투자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10년 전쯤 IBS가 양자 연구에 나설 기회가 있었다”며 “그때 과감하게 투자를 단행했다면 기술격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IBS는 기초과학 집단연구를 통해 한국의 기초과학 역량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지난달 13일 대전 유성구 IBS에서 만난 노 원장은 “당시 한국의 양자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나 연구 환경이 해외에 크게 미치지 못해서 연구단장을 구하기가 어려웠다”며 “모든 자원을 동원해 연구를 시작했다면 기술 경쟁이 시작된 지금은 더 좋은 위치에서 경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노 원장은 “양자 기술은 아직 표준이 될 기술이 정해지지 않았고, 현재 연구하는 기술들도 장단점이 워낙 뚜렷하다”며 “당장 필요한 기술은 공학자에게 맡기고, 기초과학자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양자 기술이 기초과학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노 원장은 “양자역학은 1900년대에 설명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었지만, 지금은 양자역학을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 정도로 응용할 수 있게 됐다”며 “과거에는 기초과학 지식이 산업기술이 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면 지금은 10년 정도로 속도가 단축됐다”고 말했다.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어 보이는 기초과학 연구라고 할지라도 10여년 뒤에 어떤 파급효과를 지닌 산업 핵심 기술이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 원장은 “미래 경쟁력은 당장 쓰이는 산업 기술이 아니라 기초과학의 성과로 결정된다”며 “기초과학의 성과를 축적해야만 다가올 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기초과학 연구에서 한국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노 원장은 규모도 중요하지만 한정된 연구비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연구 생산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기초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다음은 노 원장과의 일문일답.
-기초과학자로서 기술패권 경쟁을 어떻게 바라보나
“과학기술 연구 성과가 우리 생활 속에 깊게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이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단순히 특정 기술의 발전만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연결까지도 과학기술을 통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변화가 주는 파급력은 예상보다 강했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기술을 주도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예상 아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한국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은 기술 경쟁에서 계속 우위를 점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국가다. 수출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대부분이 기술 산업이다. 한국은 갖고 있는 자산이 많지 않아 결국은 기술력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한국의 기초과학자로서는 우려되는 부분이다.”
-국제 정세의 변화가 기초과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나.
“기초과학자들은 사회의 지원을 받아 자연 현상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인류 전체의 삶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결국 기초과학자들은 그동안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한 연구를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기술이 국가 간의 경쟁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기초과학자들의 역할도 바뀔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예상하나.
“앞으로 기술 경쟁이 더 심화됐을 때 한 국가에서 찾은 과학적 지식을 특정 국가가 독점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은 주로 공학 기술이 기술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기초과학도 각국의 전략 자산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의 연구 성과가 어떤 의미를 가질지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고민만큼이나 책임감도 커졌다. 기술이 경쟁의 수단이 되는 만큼 한국의 과학자로서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보다 경쟁력 있는 성과를 내야 한다.
-정부도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기술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와 이차전지를 통해 기술 경쟁을 주도하는 만큼 한국도 단기적으로 산업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현재 기초과학의 육성을 아주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덜 강조하는 상황일 수 있다.”
-산업 기술을 두고 경쟁하는데, 기초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기술패권 경쟁의 시작은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중국은 이미 산업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 워낙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산업 기술로 중국을 견제하는 데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반면 기초과학에서 중국은 여전히 미국에 한참 못 미친다. 실제로 우주산업, 인공지능(AI)처럼 첨단 기술 분야에서 기초적인 개념은 모두 미국에서 탄생했다. 결국 미국도 중국의 기초과학 성장을 막고 새로운 분야로의 확장을 막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기초과학 수준은 어떤가.
“한국은 기초과학이 강한 국가는 아니다. 4년 전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하면서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다. 그러면 일본이 왜 수출 규제라는 전략을 썼을까 생각하면 한국의 약점을 제대로 짚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후 한국의 대응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 예상되는 피해를 최소화했다. 우리가 적지만 기초 기술을 축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기초과학의 성과를 축적해야만 다가올 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초과학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기초과학의 기술 수준은 한 나라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다. 미래 경쟁력은 당장 쓰이는 산업 기술이 아니라 기초과학적 성과로 결정된다. 현재는 경제적 가치가 없는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라도 수십년이 지나서 산업의 핵심 기술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주목 받는 양자 기술이다.
양자역학은 1900년대에 설명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양자역학을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 정도로 응용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이런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초과학 지식이 산업기술이 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면 지금은 1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양자 기술은 아직 기초 단계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IBS가 할 연구가 많을 것 같다
“IBS도 이미 2010년도 중반부터 양자정보과학을 연구하는 연구단을 구축하려고 계획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연구단장을 구하기 어려웠던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한국의 양자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 규모나 연구 환경이 해외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에 어떤 식으로 투자해 나가야 하나.
“우선 과거를 반성하자면 과감한 투자를 했어야 한다. 당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연구를 시작했다면 기술 경쟁이 시작된 현재 더 좋은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현재도 IBS가 운영하는 다양한 연구단에서 좋은 성과가 많이 나온다. 기초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양자 현상을 찾는 것이다. 양자 기술은 아직 표준이 될 기술이 정해지지 않았다. 또 현재 연구하는 기술들도 장단점이 워낙 뚜렷하다. 당장 필요한 기술은 공학자들에게 맡기고, 기초과학자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연구를 하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 규모도 중요하지만, 한정된 연구비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분야를 오랜 기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기초과학 연구는 투자 대비 성과가 많은 분야다. 지금까지는 유행에 따라 연구 주제를 따라가는 문화 때문에 연구 생산성이 크지 않았다.
-IBS는 개원 12년 차를 맞았다. 지금까지 꽤 장기적인 연구를 해 왔다.
“지금까지 씨를 뿌리는 단계였다면 이제 막 싹이 움트고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구축한 연구 시스템들이 하나하나 성과를 낼 것이라고 본다. 물론 모든 연구 성과들이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분야를 개척할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또 언젠가는 한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는 책임감을 갖고 더욱더 속도를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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