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론 머스크가 ‘재벌 총수’가 되면 과연 한국에 투자할까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2023. 7. 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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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동일인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계열사 임원 지분에 관한 자료를 제출해주세요. 위반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순자산만 253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만약 우리나라 ‘재벌 총수’(동일인)로 지정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그에게 가장 먼저 요구할 제출 자료다. 가족관계가 복잡하고 자식만 10명을 둔 머스크 입장에서 난감할 것이다.

무엇보다 “난 한국 재벌(chaebol)이 아니지 않나”란 생각이 들 것이다. 미국을 포함해 중국·유럽·남미 등 전 세계에 진출해 친환경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스페이스X’ 우주사업으로 화성(mars)에 우주선 ‘스타십’을 쏘아올려 인류가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는 그에게 한국 정부의 ‘동일인 제도’는 고리타분한 훈수에 가깝다.

소설이 아니다. 테슬라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전기차 생산기지인 ‘기가 팩토리’(Giga factory) 투자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기가 팩토리 투자 규모는 5조원, 고용 창출 효과도 2만5000명에 달한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막대한 경제 효과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머스크 CEO와 만나 국내 투자를 설득했다.

그러자 경상남도를 비롯한 국회의원들도 머스크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 지역에 기가 팩토리를 투자해달라” 외치고 있다. 중국 상하이(9조원 투자), 독일 베를린(7조1500억원) 등 해외 곳곳에서 기가 팩토리를 지어 경제 활성화의 선봉장에 선 테슬라를 유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문제는 기업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돌파하면 공정위가 지정하는 대규모 기업 공시집단으로 분류돼 각종 공시 의무를 지는 동일인 ‘재벌 총수’로 지정될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이다. 테슬라가 5조원을 한국에 투자, 자산 5조원이 넘으면 머스크 CEO가 한국 재벌 총수에 등극하는 가능성이다.

공정위가 최근 ‘동일인 지정 제도’를 법에 명문화하겠다는 발표는 ‘머스크 총수’라는 상상을 현실화하려는 모습이다. 공정위는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5가지 조건으로 ▲기업 집단 최상단의 최다 출자자 ▲기업 집단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기업집단을 대표하는 자 ▲한국 기업집단의 최고 직위자, ▲동일인 승계 방침으로 동일인이 결정되는 자라고 정했다.

말하자면 ‘기업의 실권을 쥔 대주주’가 동일인 총수의 자격을 갖는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최다 출자자(지분 20.6% 보유)이고, 회사 IR자료는 “머스크는 테슬라의 ‘테크노킹’(Technoking)으로 우린 그에게 매우 의존적이다”라며 그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대외적으로 공표한다. 공정위의 동일인 자격 조건에 상당수 부합한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이 잣대로 외국인 CEO도 총수로 지정하는 시행령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계획이 현실화하면 우리나라에 투자해 자산 5조원을 넘긴 글로벌 기업의 개인 대주주나 CEO는 앞으로 모두 재벌 총수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머스크가 재벌 총수로 지정되는 불편한 규제를 감수하고도 한국에 선뜻 투자할 가능성은 ‘제로’(zero)에 가깝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 국가들도 테슬라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데, 이들 국가들보다 시장규모가 한참 작은 한국에서 각종 공시의무를 져야 하는 동일인 제도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스닥 상장 기업인 테슬라는 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요구하는 갖가지 공시 의무사항을 준수하고 있다.

머스크가 한국 재벌 총수가 되어 매년 공시 의무를 져야 하는 ‘이중 규제’에 놓이게 될 경우, 테슬라에 투자한 글로벌 투자자들도 한국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테슬라 말고도 한국에 3조3000억원 투자를 약속한 넷플릭스(리드 헤이스팅스 창업자 겸 회장), ‘샤힌 프로젝트’로 9조원대 투자를 약속한 에스오일(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 같은 해외 기업 리더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해외 투자 유치는 가뭄을 겪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외국인 직접 투자 유출액은 유입액의 4배다. 싱가포르(17%), 미국·OECD 평균(21%)과 비교해 높은 한국 법인세율(26%) 등 민간 투자를 쫓아내는 규제가 이미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동일인 총수 지정 제도는 해외 투자 유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정부가 추진 중인 동일인 지정제도 명문화는 반드시 재검토돼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글로벌 혁신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끊어 저성장 기조를 영영 고착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줄어들게 한다. 인구 소멸과 저출산의 절벽에 놓인 한국 경제가 폭삭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기업의 투자 결정을 막는 결정적 규제, 즉 킬러규제를 팍팍 걷어내라”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동일인 총수 지정제도 같은 규제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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