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왕좌, 결국 韓中 2파전… 기술력으로 中 따돌려야”
● 2차전지, 반도체·자동차와 함께 韓 경제 3축 浮上
● 일시적 거품? No! “공급이 수요 못 따라가는 상황”
● 전기차 과도기 상황, 불편함 당연해
● 불안한 1위 韓, 對中 원료 의존 극복이 관건
● 향후 10년에 成敗 달려… “인력 양성이 승자의 조건”
정경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 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2차전지 전문가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브룩헤븐국립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6년 KIST에 입사했다. 2014년부터 에너지저장연구센터 센터장, 한국전기화학회 2차전지분과회를 맡아 차세대 2차전지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 2차전지 시장에 부는 'K-배터리' 바람이 뜨겁다. 고품질 배터리를 확보하기 위한 완성차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기름을 붓고 있다. '탄소중립'이 세계 과제로 떠오르며 커진 전기차 산업 덕분이다. 6월 4일 미래에셋증권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올해 3분기 말 수주잔고는 1000조 원을 상회할 전망이다.
6월 8일 서울 성북구 KIST에서 만난 정경윤 센터장은 2차전지 열풍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며 "생활필수품으로서 2차전지 사용은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2차전지가 각광받는 현 상황을 고무적으로 여기면서도 "해결할 과제가 많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물량 공세로 시장을 잠식하는 중국을 감안하면 낙관적 전망을 내놓을 수만은 없다는 게 이유다. 그는 "한국이 2차전지 시장에서 승자가 되느냐 마느냐는 향후 10년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며 "국가 차원의 대대적 연구·개발을 통해 승기를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차전지, 공기처럼 일상 될 것
근 몇 년 새 2차전지가 부쩍 주목받고 있다."전기차 덕에 그렇다. 2차전지는 한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와 달리 다시 충전해서 여러 번,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횟수만큼 쓸 수 있는 전지를 말한다. 열풍이 불기 전부터 널리 쓰였다. 과거 집에서 쓰던 무선전화기 및 휴대전화 배터리, 보조배터리 등이 다 2차전지다. 이 가운데 리튬이온전지를 자동차 동력원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늘어났고 시장도 커졌다. 예컨대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2차전지 용량은 휴대전화의 그것보다 6만~10만 배 크다. 생산량 증가가 당연한 수순이다. 이에 2차전지 기업과 소재 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눈에 띄게 된 거다. 과거 2차전지를 널리 쓰면서도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곧 전기차 배터리도 늘 있지만 못 느끼는 공기와 같이 되리라 본다."
2차전지 시장규모는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와 IHS마켓에 따르면 2025년 2차전지(리튬이온전지) 매출은 1600억 달러로 같은 기간 메모리 반도체 매출 1490억 달러를 넘는다. 이에 대해 정 센터장은 "신빙성 있는 분석"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동차업계 특성상 수년치 물량을 선(先)계약한다. 이를 감안하면 퍽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흔히 한국의 주력 먹거리 사업으로 반도체·자동차가 꼽히곤 했다. 2차전지도 이와 함께 한국 경제의 큰 축이 되리라고 본다."
2차전지가 유독 각광받는 까닭이 있나.
"인류가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이지 싶다. 2차전지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전기를 쓰려면 콘센트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2차전지 덕에 그러지 않고도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음악을 듣는 등 마음껏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2차전지는 '선'을 없앰으로써 인류에게 이동·활동의 자유를 줬다. 2차전지가 사라지면 자유도 사라진다."
2차전지 열풍에 기업들은 앞다퉈 이 분야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차전지 관련 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 코스닥 상장사는 16개다. 사업 목적 변경을 예고한 곳까지 합치면 20곳이 넘는다. 이러한 소식만으로 해당 기업들의 주가는 폭등했다. 2차전지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재 부문 애널리스트는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 가운데 실제로 사업을 추진할 여력이나 기술력이 없는 곳이 즐비하다. 기대감만으로 '묻지마 투자'를 하는 풍조가 만연해 우려된다. 암호화폐·메타버스도 한때 '붐'을 일으켰지만 실체를 증명하지 못하니 결국 수그러들었다. 2차전지가 일시적 열풍에 그치지 않으려면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차전지 열풍을 '거품'이라고 보는데.
"그렇지 않다. 2차전지는 이미 생활필수품이 돼가고 있다. 암호화폐가 사라진다고 해서 경제가 마비되지 않는다. 현금이나 카드를 쓰면 된다. 2차전지가 사라지면 어떨까. 당장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것이다. 또 탄소중립이라는 정책적 뒷받침도 있다. 계속 팽창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다만 주식시장엔 거품이 끼었을 수 있다. 2차전지 사업은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LG·SK·삼성과 중국 기업 등 큰 기업도 물량을 맞추는 데 버거워한다. 신생 기업이 진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패러다임 바뀐다
전기차 사용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2차전지 기술력의 한계가 문제로 지적된다.
"‘한계'가 아니라 '과제'라고 본다. 사람들이 수십 년간 내연기관차를 타고 살았다. 전기차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게 당연하다. 차차 해결될 문제로 본다. 먼저 안전성. 인사(人死)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화재를 지연하고 운전자에게 미리 알려주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물론 전고체 배터리 개발 등 화재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끔 하는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주행거리를 늘리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2차전지를 개발하거나 배터리 탑재량을 늘리는 것이다. 충전의 불편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미국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급속 충전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고 한다. 차를 쓸 만큼 쓰고, 일하거나 잘 때 충전하면 되니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거다."
"기술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정경윤 센터장은 "2차전지 시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로 커질 것"이라며 "한국이 이 시장에서 승자가 돼 발전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올해 3월 출간한 저서 '이차전지 승자의 조건'에선 "현재 한국은 실질적으로 세계 1위지만 불안한 1위다"라고 썼다. 현재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고삐를 조여야 한다는 의미다.저서에서 한국이 '불안한 1위'라고 했다.
"중국의 내수시장 매출을 감안하면 한국이 실질적 1위가 맞다고 본다. 기술력이 특장점이다. 특히 셀 기술이 그렇다. 시장에서는 기술력만으로 승자가 결정되진 않는다. 가격도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이 가장 위협적이다. 중국의 2차전지는 생각 이상으로 저렴한데, 예전처럼 싸기만 한 게 아니다. 기술력도 상당히 올라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한국이 소재·원료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의존도가 어느 정도인가.
"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을 핵심 4대 소재로 보는데, 50% 이상 중국산을 쓰고 있다. 원료 상황은 더하다. 60~80%가 중국산이다. 자원 부분에선 중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주요 원료를 놓고 보면 리튬의 70%가 '남미 트라이앵글(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에 있고, 니켈은 인도네시아, 코발트는 콩고에서 많이 난다. 살펴보면 이들 모두 선진국이라 할 순 없는, 자원 판매가 주요 수입인 국가다. 중국이 이 국가들의 광산을 많이 샀다. 한국도 수입국을 다변화하거나 자원을 매입할 필요가 있다. 기업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반도체와 비교했을 때 2차전지에 대한 지원은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현재 산업 규모는 반도체가 크지만 향후 가능성을 본다면 2차전지도 그에 필적하는 규모가 된다. 이 시장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관건이다. 정말 중요한 시기다. 국가 자원을 어떻게, 어느 시점에 투입할지 고민해야 한다. 향후 10년에 승자가 갈린다고 본다."
한국이 승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지속적 연구·개발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곧 인력 양성을 의미한다. 기술은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학교·연구원에 더 많이 지원해 주었으면 한다. 2차전지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현재 쓰는 리튬이온전지도 1990년대 나온 초기 모델과 차이가 크다. 한국이 가격경쟁에서 중국을 이기긴 힘들다. 기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원래 한국은 기술로 먹고사는 나라 아닌가."
이현준 기자 mrfai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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