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수백, 수천의 조합원들이 모이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상이하거나 소통이 부재한 탓에 조합과 조합원 사이 눈을 흘기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 같은 내홍도 흔히 '8부 능선'으로 불리는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으면 잠잠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조합도 흔하다.
지난 6월30일 찾은 'DMC SK뷰 아이파크포레'. 경의중앙선 수색역에서 10분 거리인 이 곳은 입주 한 달여를 남기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문주부터 상가, 주차장까지 주요 시설물은 대부분 공사를 마쳤다. 빌트인 마감이 진행 중인지 단지 곳곳엔 유명 가전 브랜드가 적힌 박스가 수십 개씩 쌓여 있었다. 아직 주인을 다 찾지 못한 상가 앞에는 '분양 중'이란 커다란 팻말이 내걸렸다.
이 단지는 은평구 수색로20가길 9(수색동) 일대 6만9681㎡ 규모의 수색13재정비촉진구역을 재개발한 곳으로 지하 5층~지상 20층(평균 14.8층) 21개동의 아파트 1464가구와 부대복리시설 등으로 구성됐다. 수색13구역은 2012년 4월 조합설립인가, 2017년 7월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고 2018년 9월 관리처분계획과 2020년 착공을 거쳐 이달 입주를 앞뒀다. 노후화된 도시 환경과 주택 상태로 정비사업 필요성이 제기되던 2000년대 초 정부가 3차 뉴타운으로 지정하며 재개발의 닻을 올렸다.
수색변전소 지하화에 따른 인·허가 지연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해진 인근 정비구역과 달리 수색13구역 사업은 물 흐르듯 원활히 진행됐다. 입주만 하면 끝날 줄 알았지만 결국 조합 내 분쟁이 시작됐다. 조합원 일부가 조합 임원을 해임하겠다고 나서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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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로 평형(주택형) 변경신청기간 연장한 조합장… 위법 판결한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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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A씨는 최근 조합장 B씨와 임원 6명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A씨와 B씨 사이 갈등의 시작은 분양신청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최초 분양신청기간이었던 2018년 상반기 112㎡형을 1순위로 신청했고 같은 해 9월 은평구청장은 이를 토대로 한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했다. 이후 조합은 기부채납을 통해 추가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게 되자 대형 평형(주택형) 물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변경을 추진, 재분양에 해당하는 평형 변경 신청을 개시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B씨는 2019년 6월 정기총회에서 평형 변경신청기간을 35일로 한정하는 안건에 대해 의결을 받은 후 그해 11월 조합원들에게 이를 통지했으나 이후 별도의 총회 개최 등의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신청기간을 8일 연장했다. A씨는 이 기간 1순위 120㎡형 분양을 신청했으나 막상 배정된 것은 59㎡형이었다.
불법적으로 연장된 변경신청기간에 평형 변경을 신청한 총 24명의 조합원 중 3명의 조합원은 1순위로 원한 120㎡형을 배정받았다. 그 중 1명은 변경신청을 하면서 원치 않는 평형을 배정받자 신청 기간이 지난 시점인 2020년 3월 B씨에게 변경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곧 긍정의 답변을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2020년 서울행정법원에 자신 몫의 아파트 평형이 59㎡형으로 확정된 관리처분계획무효확인의 소를 제기,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B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심리 없이 이를 기각했다. 판결 결과에 따라 변경해야 할 관리처분계획은 지난 7월1일 총회에서 의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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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손실보전금 내역 못 봤다" vs 시공사 "조합 측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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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 사이에선 지난달 10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입주자 사전점검 이후로 조합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졌다. SK에코플랜트와 HDC현대산업개발로 이뤄진 시공사업단(컨소시엄) 측에서 무상 설치키로 한 중문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해당 중문은 시공사가 70만원, 조합이 110만원씩 각각 부담해 180만원 상당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공지됐으나 입주자 사전점검 당일 다수의 가구에서 문이 흔들리고 문틈이 벌어지는 등의 하자가 발견됐다.
조합원들은 "조합장 측에 관련 자료의 공개를 요구했지만 응답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조합장 B씨는 "중문은 컨소시엄이 맡아 해주기로 한 부분이어서 자재 원가 등 관련 정보는 집행부도 모른다"고 했다.
컨소시엄이 손실보전금으로 제시한 100억원을 조합 예비비에서 제하겠다는 집행부의 주장 또한 조합원들의 반대를 일으켰다. 컨소시엄 측이 보낸 손실보전 요청에 관한 공문엔 건설공사비 지수의 변동과 착공 시점 대비 실투입 공사비에 따른 손실금 액수만 나와있을 뿐 어떤 자재를 얼만큼 사용했다는 내용의 정확한 내역서가 없다는 이유다.
B씨는 "2021년 9월 공사비를 한 차례 증액했을 때 컨소시엄 측에선 자재비가 너무 가파르게 오르고 있으니 안정화될 때까지 공사를 멈추자고 제안했지만 조합장으로써 입주가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 공사를 계속 진행하는 대신 추후 손실보전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중문의 경우 설치 불량 등 민원에 대한 보강 공사 진행과 금전 보상 방안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공문을 보냈다"며 "정확한 원가 내역은 입찰로 선정된 중문 시공업체에 별도 문의했다"고 설명했다. 공사비 내역은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조합 측에 송부됐다.
조합원들은 "지난 7월1일 총회 안건으로 중문 설치와 공사비 증액분 관련 내용이 상정됐으나 총회책자에는 금액 내역서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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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총회서 불거진 갈등… 조합 임원 해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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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지난 1일 오후 2시에 개최된 조합 임시총회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조합 집행부와 이들에 반대하는 '수색13구역 예비입주자협의회'(이하 협의회) 사이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A씨 평형 배분에 관한 관리처분계획 변경 ▲사업시행계획 시행기간 연장 ▲시공사업단의 100억원 손실보전금 요청 ▲중문 등 무상옵션 세부 내용 변경 등 9개였다.
협의회는 조합이 정족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안건을 모두 가결했다고 주장했다. 총회의 의결은 조합원의 10% 이상이 직접 출석해야 함이 원칙이나 창립총회나 사업시행계획서·관리처분계획의 작성·변경을 의결하는 총회의 경우 조합원 20%의 직접 출석을 필요로 한다. 수색13구역 조합원은 약 900여명이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인원 중 의결 시 착석한 인원은 20여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B씨는 "총회 초반 정족수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10% 참석으로 의결이 가능한 안건을 먼저 처리한 후 조합원 추가 참석을 기다리다가 오후 5시경 20%가 채워진 것으로 판단,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에 관한 안건을 가결한 것"이라며 도정법 위반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조합은 총회 하루 전날 개최 장소를 단지 내 건축 중인 문화시설 앞에서 지하주차장으로 변경했다. 총회는 개최 7일 전까지 안건과 일시·장소 등을 각 조합원에게 등기우편으로 발송·통지해야 하며 부득이하게 변경이 이뤄진 경우 조합원 전원에게 이를 최대한 빠르게 알려야 한다. 조합 측은 본래 총회 공지에 장소를 '문화시설 앞'이 아닌 '수색13구역 공사현장 내'라고 기재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B씨는 지난 3일 조합원들에게 "총회를 매끄럽게 이끌지 못한 것에 사과드린다"며 "손실보전금의 경우 컨소시엄과의 재협상을 통해 지급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금액으로 정할 것"이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조합 측이 총회 장소를 하루 전에 바꾸고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과 의결 시 정족수가 부족한데도 총회를 강행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당일 협의회는 총회 불참 의사를 알리는 조합원의 서면결의 철회서 590여장을 조합에 접수했으나 이 또한 수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의결 당시 자리했던 조합원 수의 경우 영상 증거 등을 통해 확인해봐야 할 부분이나 총회 장소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절차상 하자에 해당해 총회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서면결의 철회서는 조합이 받기를 거부해도 전달한 시점부터 그 효력을 갖춘다"고 설명했다.
협의회는 이달 29일 총회를 위법적으로 개최한 조합 집행부의 해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조합 임원 등은 조합원 10% 이상의 요구로 소집된 총회에서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으면 해임될 수 있다. 남기룡 법무법인 로드맵 대표변호사는 "조합원 10%를 모아 임시총회를 열더라도 그 중 과반수 출석 등 요건을 충족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며 "다만 A씨가 B씨를 비롯한 조합 임원들을 도정법 위반으로 고소해 B씨의 불법행위가 법정에서 인정, 100만원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당연퇴직 사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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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앞둔 조합 내홍, 핵심은 정산금… 분쟁 해결 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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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13구역처럼 재개발 막바지에 조합장 교체의 바람이 분 대표 단지가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가락시영재건축)다. 조합원만 6700명에 달했던 이 조합은 2018년 입주를 마쳤으나 2021년 조합장 교체를 위한 선거에 나선 바 있다. 새 조합장이 청산과 해산 절차를 담당해주길 바라서다. 결국 입주 4년을 넘긴 올 5월에서야 해산의 발걸음을 뗐다.
통상 정비사업 조합은 일반분양 등에서 발생한 수익이 남으면 해산 과정에서 이를 조합원들에게 배분한다. 조합을 둘러싼 소송이나 상가 미매각 등의 사유로 해산이 차일피일 미뤄지면 결국 그 손해는 조합원이 지는 구조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사인에 해당하는 각 조합원 재산에 관한 문제인 데다 갈등 원인이 다양해 시비를 가리기 어려워 조합 내 갈등은 내부에서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며 "2016년 원활한 정비사업을 위해 전문조합관리인이란 외부인으로 하여금 조합 임원의 업무를 대신하는 제도가 도입됐으나 이들의 자격을 판단하는 조건이 모호하고 조합원이 거부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