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K-엔터주,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까?
[비즈니스 포커스]
주요 K팝 아티스트들의 글로벌 팬덤이 커지면서 주식 시장에서도 하이브·JYP엔터테인먼트(JYP)·YG엔터테인먼트(YG)·SM엔터테인먼트(SM) 등 K-엔터주들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증권가에선 이미 엔터 4사(하이브·JYP·YG·SM)가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이들의 지난 1분기 합산 매출은 890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9% 증가했다. 합산 영업이익은 1493억원으로 전년 대비 93.4% 증가했다. 분기 최대 실적이다.
엔터업계 대장주로 손꼽히는 JYP는 올 들어서만 주가가 90% 이상 뛰어올랐고 YG와 하이브의 주가 또한 각각 67%, 56% 정도 상승했다. 7월 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하이브·YG·SM 등을 대상으로 하도급 용역 불공정 행위 조사에 나서며 주가가 출렁이고 있지만 올 하반기에도 엔터주들의 반등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K-엔터주들의 고공 행진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오를 만큼 오른 주가에 지금 뛰어들어도 괜찮은 것인지 투자자의 관점에서 짚어 봤다.
전성기 길어지고 있는 ‘BTS의 후예들’
K팝이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글로벌 최대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K팝의 전성기를 이끈 BTS와 블랙핑크 등이 유튜브와 함께 팬덤을 키우고 K팝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를 통해 걸그룹이나 보이 밴드를 접한 이들이 팬으로 입덕한다. 팬덤을 중심으로 앨범이나 굿즈 판매량이 증가하고 콘서트 등이 활성화되며 음악 산업 또한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K팝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은 ‘글로벌 팬덤’이다. 지금 ‘잘나가는’ K-엔터주가 앞으로도 잘나갈지를 따져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도 ‘신규 글로벌 팬덤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을지’ 여부다. 업계에서 이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구보 판매량, 즉 신규 앨범이 아닌 기존 앨범의 판매량이다. 기존 앨범의 판매량 증가는 다시 말해 유튜브 등을 통해 K팝 스타에게 ‘새롭게 입덕’하게 되면서 신곡뿐만 아니라 과거의 노래 등을 찾아 듣게 되고 자연스럽게 앨범을 구매하고 콘서트를 즐기는 ‘코어 팬’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난 3년여간의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글로벌 음반 시장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업계에는 악재였다. 하지만 오히려 오프라인 콘서트가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글로벌 팬덤을 중심으로 한 실물 음반 판매량이 더욱 늘었다. 외부 활동이 차단된 시기에도 유튜브 등을 통한 K팝 콘텐츠의 노출도가 급증하며 K팝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인 ‘글로벌 신규 팬덤’의 유입이 가속화되는 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환욱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전 세계 레코딩 음악 시장은 전년 대비 9% 증가한 261억 달러로 팬데믹이 끝나고 리오프닝 국면에 접어들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K팝 팬덤 문화를 중심으로 강한 수요가 나타나며 지난 20년간 위축됐던 실물 음반 시장 또한 2021년을 기점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실제 실물 앨범 판매량으로도 나타난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지난 7년간 K팝 가수들의 실물 앨범 판매량은 해마다 37.2%씩 증가해 왔다. 2022년 톱100 기준 총 앨범 판매량은 7700만 장으로 전년 대비 36.4%의 고성장을 이어 가는 중이다. 지금 K-엔터주의 질주가 BTS와 같은 ‘스타의 인기’에 기댄 한순간의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인 성장기에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년부터 서서히 재개되기 시작한 콘서트와 팬미팅 행사 또한 긍정적이다. K팝을 대표하는 걸그룹인 YG의 ‘블랙핑크’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3회 1위를 기록하며 K팝의 대표 보이 밴드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JYP의 ‘스트레이 키즈’가 대표적인 예다. 두 팀은 모두 월드투어를 이후 구보 판매량이 증가하는 등 글로벌 신규 팬덤의 유입이 늘고 있는 추세다.
K팝을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반짝 인기’가 아닌 구조적인 성장기에 진입했다는 근거는 또 있다. K팝의 전성기를 이끈 BTS 외에도 다양한 가수들이 폭넓은 글로벌 팬덤을 구축하며 대형 지식재산권(IP)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하이브 소속의 ‘세븐틴’은 미니 10집 FML의 초동 판매량이 455만 장을 기록하는 등 BTS를 뛰어넘어 K팝 역사상 가장 높은 성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올해로 데뷔 6년 차에 접어드는 JYP의 스트레이키즈 또한 구보 판매 비율이 20%를 웃도는 등 BTS와 상당히 유사한 성장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블랙핑크는 물론 뉴진스·르세라핌·트와이스 등 걸그룹의 활약 또한 눈에 띈다. 엔터테인먼트사들의 매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BTS 외에 다양한 K팝 그룹들이 탄생하며 좋은 성적을 얻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는 이들의 전성기가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K팝 그룹의 IP 성장성과 수익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통상 K팝 그룹의 전성기는 7년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대부분의 K팝 그룹들이 7년을 기점으로 재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K팝 걸그룹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YG의 블랙핑크와 JYP의 트와이스는 데뷔 7년 차를 넘었음에도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고 있다. 블랙핑크는 데뷔 7년 차를 맞은 올해 1분기 가장 많은 구보 판매량을 기록하며 글로벌 신규 팬덤을 유입시키고 있다. 트와이스 또한 지난해 JYP와 재계약 후 올해 초 발매된 미니 12집으로 신보 판매량은 물론 구보 판매량에서도 높은 수준을 달성하고 있다.
폐쇄적인 경영 시스템 등 개선해야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 K-엔터주의 대표 주자인 하이브에 대한 첫 보고서를 발간했다. 하이브는 BTS를 포함해 글로벌 음악 산업 내에서도 가장 강력한 IP를 다수 보유한 최대 기획사다. 이를 활용한 음반·콘서트 등 직접 매출뿐만 아니라 위버스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MD 상품, 콘텐츠 등 간접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는 만큼 향후 주가가 오를 가능성을 높다고 내다본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특히 이 리포트에서 K팝 아티스트들의 빠른 성장세로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한 긍정적인 투자 심리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이브뿐만 아니라 JYP 등 K-엔터주 전반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내다본 것이다.
실제 최근 K-엔터주들의 주가 고공 행진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래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3일 기준 외국인들이 JYP 주식을 사들인 금액은 약 4141억원이다. JYP의 외국인 지분율은 47.18%에 달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JYP 외에 YG·SM·하이브 주식도 각각 1000억원어치 이상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K-엔터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질수록 경고음 또한 커지는 중이다. K팝을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산업적으로 성장한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급속하게 성장한 만큼 기초 체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불투명한 경영 시스템’이 문제로 지목된다. K팝 산업의 폐쇄적인 지배 구조와 경영 시스템으로 인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창업자(혹은 대표)의 입김이 지나치게 큰 곳이 상당히 많다.
이수만 SM 창업자는 ‘라이크기획’을 통해 SM 수익의 상당 부분을 유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으며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소속 아티스트와 소속사가 ‘소송’에 휩싸이는 경우도 자주 나타난다. 지난해 말에는 가수 이승기 씨의 소속사였던 후크엔터테인먼트가 데뷔 이후 18년 동안 음원 수익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고 최근에도 글로벌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한국 걸그룹 피프티피프티가 소속사와 분쟁에 휩싸인 바 있다.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현재 K팝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기회 요인도 크지만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산업적으로 기초 체력을 탄탄히 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글로벌 음악 산업 자체가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는 만큼 현재의 화려한 성과로 장밋빛 미래를 장담하기엔 변수가 많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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