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동부그룹 창업주와 사모펀드의 질긴 악연

이석 기자․송응철 기자 2023. 7. 1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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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 중인 DB하이텍과 KCGI의 첫 상견례에서 이견…향후 경영권 분쟁으로 번질지에 재계 이목 쏠려

(시사저널=이석 기자․송응철 기자)

김준기 DB그룹(옛 동부그룹) 창업회장의 '반도체 사랑'은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김 창업회장은 1997년 동부전자를 설립했지만 그해 불거진 IMF 여파로 반도체 사업을 접어야 했다. 김 창업회장은 2001년 다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나섰다.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동부전자와 합병(2004년), 동부한농과 합병(2007년) 등을 통해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실적은 개선되지 않았다. 회사 설립 때부터 2013년까지 단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룹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동부그룹은 2013년 11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었다. 적자 회사인 동부하이텍은 당시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일순위였다. 하지만 김 창업회장은 당시 35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DB하이텍을 지켜냈다. 결국 구조조정 과정에서 동부제철(현 KG스틸)과 동부특수강(현 현대종합특수강), 동부익스프레스(현 동원로엑스), 동부대우전자(현 위니아전자), 동부팜한농(현 팜한농) 등 주력 계열사뿐 아니라 그룹의 모태 회사인 동부건설까지 매각됐지만 DB하이텍은 건져낼 수 있었다. 

DB하이텍은 2014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이후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김 창업회장은 2017년 가사도우미에 대한 피감독자 감음 및 비서에 대한 성추행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법원은 김 창업회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후 그는 미등기 임원으로 그룹 경영에 복귀했는데, 지주회사인 DB Inc.와 함께 DB하이텍에만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반도체 사업에 대한 애정이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창업회장·강성부 KCGI 대표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미운 오리 새끼에서 그룹의 캐시카우로

이런 기조는 2세 경영인인 김남호 회장 때도 이어진다. DB하이텍은 김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21년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 DB하이텍은 1조6753억원의 매출과 768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9.1%, 92.6% 증가한 수치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그룹의 캐시카우로 위치가 바뀐 것이다. 김 회장은 최근 DB하이텍에 대한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해 추진했다가 무산된 팹리스(반도체 설계) 사업부문의 물적 분할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이다. 주력 사업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팹리스 부문의 분할이 불가피하다는 게 DB그룹 측의 주장이었다. 당장 소액주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주가 역시 요동쳤다. 하지만 팹리스 물적 분할 안건은 3월29일 열린 주주총회를 무사히 통과했다. 지난 5월에는 DB글로벌칩이라는 독립법인으로 분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총은 통과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른바 '강성부 펀드'로 더 잘 알려진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지난 3월 DB하이텍 지분을 취득한 후 주주행동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KCGI는 특수목적법인(SPC) 캐로피홀딩스를 통해 DB하이텍 지분 7.05%를 매입했다. DB Inc.(12.42%)에 이은 2대 주주로 김 창업회장(3.61%)보다 지분율이 3.44%나 높다.

KCGI는 오너 일가와 경영진의 구시대적 경영 행태로 DB하이텍의 기업 가치가 극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KCGI는 DB하이텍이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과 물적 분할을 추진하고, 오너 일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660억원 규모의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진행한 점 등을 들었다. KCGI는 또 DB월드 지분에 대한 콜옵션 미행사와 세무조사 결과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부족, 지난해 특수관계인에 대한 지급수수료 급증 등을 지적하면서 DB하이텍 측에 내부통제 시스템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KCGI는 주주권익 제고를 위해 필요한 내용 설명 및 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주주서한을 DB하이텍에 수차례 발송했다. 하지만 DB하이텍에서 자료 제공을 미루자 KCGI는 실력 행사에 나섰다. 6월9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 회계장부 등 열람·등사 가처분신청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자료 은닉 및 폐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KCGI 측의 설명이다.

DB하이텍 역시 삼성증권을 경영권 방어 자문사로 선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공시를 통해 투자유치설명회(IR) 행사 개최 사실을 알리며 우호지분 확보에도 나섰다. DB하이텍이 공시를 통해 IR 행사를 진행하는 건 1997년 창립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DB하이텍 관계자는 "KCGI의 대면 협의 요구를 수락하고 곧 있을 협의를 위해 성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회계장부 열람 및 이사회 의사록 열람등사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면서 "KCGI 측이 과연 주주 간 대화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KCGI가 최근 DB하이텍을 겨냥한 주주행동을 본격화해 주목된다. 사진은 DB하이텍 부천캠퍼스 ⓒ시사저널 최준필

과거 상표권 문제로 사모펀드와 갈등 빚기도

양측은 최근 '상견례'를 가졌다. 모처에서 만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KCGI는 DB하이텍에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과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 사퇴 등 지배구조 개선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DB하이텍은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준기 창업회장의 보수와 사퇴 문제 등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재계에서는 DB하이텍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KCGI는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지분을 추가 매입해 정기 및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DB그룹과 사모펀드 간의 오랜 악연에 주목하기도 한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키스톤PE)는 2017년 법정관리 중이던 동부건설을 인수했다. 동부건설은 동부그룹의 모태 회사로 '동부' 브랜드의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다. 키스톤PE가 동부건설을 인수한 데는 이 브랜드 상표권의 프리미엄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키스톤PE 역시 과거 동부그룹 계열사들이 이용한 브랜드 사용료를 DB그룹 측에 요구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모태 회사를 빼앗기고, 거액의 브랜드 사용료 부담까지 지게 된 김준기 창업회장은 창립 45년 만에 사명을 '동부'에서 'DB'로 교체한 바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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