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人터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리틀 연아' 임은수 "즐겁게 타는 스케이팅 보여 드릴게요"

조영준 기자 2023. 7.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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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은수 ⓒ광운대아이스링크, 조영준 기자

[스포티비뉴스=광운대 아이스링크, 조영준 기자] "제가 그동안 해왔던 분야(스케이팅)를 즐겁고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어서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그리고 스스로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다시 관객 여러분 앞에서 스케이트를 타게 돼 기쁩니다."

김연아(33)가 뿌린 씨앗에서 피어난 많은 '리틀 연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잊히지 않고 좀처럼 시들지 않는 눈꽃이 아이스링크에 녹아 아련한 추억으로 새겨졌다.

임은수(20, 고려대)는 한때 가장 촉망받던 피겨 스케이팅 기대주였다. 그는 김예림(20, 단국대) 유영(19) 이해인(18, 세화여고) 등과 한국 여자 피겨 스케이팅을 이끌었다. 2016년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3위를 차지하며 '차세대 기대주'로 떠오른 그는 이후 한동안 국제 대회에서 값진 성과를 거뒀다.

임은수는 당시 경쟁자였던 유영, 김예림보다 국제 대회에서 한 걸음 앞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7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오르며 당시 김연아 이후 최고 성적표를 받았다. 또한 시니어 무대에 진출한 뒤에는 ISU 그랑프리 대회(2018년 ISU 러시아 로스텔레콤 컵)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당시 그는 ISU 시니어 그랑프리 여자 싱글에서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 임은수 ⓒ광운대아이스링크, 조영준 기자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총점 200점을 돌파(205.57점)하며 '톱10'을 달성했다.

그러나 2021년 ISU 그랑프리 NHK트로피 5위 이후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종 목표였던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뒤에는 공식 대회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그러나 여전히 빙판을 떠나지 않았고 현재 미디어 아트와 아이스쇼를 결합한 뮤지컬 형식의 창작 이이스쇼인 지쇼(G-SHOW) 준비에 여념이 없다.

10대 시절 다소 새침하고 수줍게 웃었던 소녀 대신 한층 성숙해졌고 호탕하게 웃는 '대학생' 임은수를 서울 노원구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에서 만났다.

▲ 2019년 올댓스케이트 아이스쇼에서 연기를 펼치는 임은수 ⓒ곽혜미 기자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분야도 도전하고 싶은 꿈 많은 여대생

베이징 동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올림픽 2차 선발전인 2022년 전국종합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임은수는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었다. 최근에는 지쇼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한 유망주들의 안무도 짜주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가 잘해왔던 분야(스케이팅)에서 배웠던 것을 가르쳐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사실은 꼭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팀에서) 한두 번 불러서 간 것이 도움이 됐고 점점 영역이 확정되다보니 안무까지 짜게 됐어요."

임은수는 아직 공식적인 지도자나 코치는 아니다. 옛 스승인 최형경 코치 팀에서 몇몇 선수들을 봐주게 됐고 이후 이러한 활동이 조금씩 커져 다른 선수들의 안무까지 완성하게 됐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해서 (안무에) 사용해 보고 싶은 음악들이 많았어요. 어린 선수 몇 명에게 안무를 줬는데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음악도 줬고 그 선수에게 어울리는 음악도 줬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안무로 완성하면서 재미를 느꼈고 가르치면서 선수들이 성장하는 점을 보면서 뿌듯했습니다."

지난해 1월 열린 2022년 종합 선수권대회 이후 임은수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당시 대회의 기억에 대해 그는 "마지막 목표는 올림픽이었다. 그 경기가 올림픽 선발전이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로든 마지막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도 있었고 마지막(대회)인 것처럼 준비했다"고 회고했다.

현재 대학교 2학년인 임은수는 지도자 혹은 안무가 같은 구체적인 미래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고 마음껏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금은 도전하고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 아직 학생이고, 공연도 준비하고 있고, 가르치는 일도 해봤는데 이것저것 해보면서 제 길을 찾을까 합니다. 연기는 예전부터 관심도 있었는데 기회가 와서 오디션에 응하게 됐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여러 가능성을 열고 찾아가려고 해요."

▲ 임은수 ⓒ광운대아이스링크, 조영준 기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선수 생활의 아쉬움과 '팀 메이트 사건'

임은수는 여러모로 가능성이 많은 선수였다. 그만큼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비거리가 뛰어난 트리플 +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갖췄고 그만이 해낼 수 있는 표정 연기와 무대 장악력은 임은수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큰 기대를 걸고 준비한 해외 전지훈련 과정이 뒤틀리면서 그의 상승세는 제동이 걸렸다. 2018~2019 시즌을 준비하던 임은수는 유명 선수들을 배출한 지도자이자 세계적인 점프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인 라파엘 아르투니안(아르메니아, 미국) 코치 팀에 합류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아르투니안 코치 팀이 있는 미국으로 향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 공식 연습에서 임은수는 쇼트프로그램 연기를 마친 뒤 우측 링크사이드에 붙어서 천천히 스케이팅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다음 순번으로 곡을 맞추던 당시 팀 메이트 머라이어 벨(미국)의 스케이트날 토가 임은수의 종아리를 찍었다.

임은수는 고통을 참지 못했고 공식 연습을 곧바로 중단했다. 링크 밖에서 그는 현장 의료진으로부터 긴급 처치를 받았다. 벨의 스케이트 날로 찍힌 왼쪽 종아리는 부어올랐다.

이 사건으로 당시 16세의 어린 소녀인 임은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팀 메이트 벨과의 사건 이후 아르투니안 코치 팀과의 계획은 어긋났고 결국 다시 한국에 귀국해야 했다.

피겨 여자 선수에게 이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시니어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량을 다져야 하고 기존 점프 및 기술의 퀄리티를 높이고 독자적인 표현력을 높여야 한다. 또한 체형 변화에 대한 적응과 부상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국제 대회에서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다.

▲ 2020년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경기를 펼치는 임은수 ⓒ곽혜미 기자

그러나 해외 전지훈련 일정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임은수의 발걸음에는 제동이 걸렸다.

"지금에야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으로 안 된 점은 심리적인 영향이 컸어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의욕도 있었고, 가장 열심히 할 때 예상치 못하게 한국에 돌아왔죠. (성장에 대한) 갈증을 느꼈기에 해외 전지훈련을 선택했고 의욕도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회복하려고 했지만 운동 효율도 떨어졌고 기술과 점프도 안 되면서 악순환이 이어졌죠."

성인이 된 임은수는 당시 상황에 대해 '누구 탓'을 하지 않았다. 또한 여자 선수라면 체형 변화와 부상이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유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는 "체형 변화도 있었지만 큰 원인은 아니었다. 큰 부상도 없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조심스럽게 머라이어 벨과의 사건을 묻자 임은수는 "두 사람의 문제였고 와전도 많았다. 그 일(충돌 사건)이 고의였는지 아닌지는 제가 입증할 수 없다. 그 분(벨)만 아는 일"이라면서 "당시 팀의 다른 선수들과도 관계가 안 좋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 점은 문제가 없었고 지금은 저도 많이 극복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거 같다"고 털어놓았다.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받은 상처는 컸다. 그러나 임은수는 이 대회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톱10'을 달성했다.

▲ 2019년 중국 상하이 트로피에서 경기를 펼치는 임은수

"그 일은 쇼트프로그램 경기 몇 시간 전에 일어났어요. 경기 뛰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때 세계선수권대회(여자 싱글)에는 저 혼자 나갔습니다. 국내 선수들의 차기 대회 출전권도 걸려 있었죠. 그렇기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겠다'라고 생각했고 링크에 들어갔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긴장을 많이 안 했고 생각보다 의연하게 할 수 있었죠."

큰 시련을 이겨낸 임은수는 이 대회에서 김연아 이후 총점 200점을 넘겼다. 또한 10위권 진입에 성공하며 차기 세계선수권대회 한국 여자 싱글 출전권을 2장으로 늘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묻자 그는 'Somewhere in Time(2018~2019 시즌 쇼트프로그램)'을 꼽았다. 임은수는 "처음 시도했던 서정적인 분위기의 곡이었고 안무가인 제프리 버틀(캐나다)과도 잘 맞았다"고 밝혔다.

▲ 창작 뮤지컬 아이스쇼 지쇼(G-SHOW)를 전 피겨 선수들과 준비 중인 임은수 ⓒ광운대학교아이스링크, 조영준 기자

여전히 '스케이터 임은수'를 기억해 주신 팬들에게 감사…"좋은 공연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현재 임은수가 준비하고 있는 지쇼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순정공의 부인 수로부인의 설화를 각색한 뮤지컬 아이스쇼다. 임은수는 전 국가대표 안소현(22)과 주인공인 '해나' 역을 맡았다. 오디션을 보고 배역을 따낸 임은수는 피겨 스케이팅의 표현력과 뮤지컬이 조화를 이룬 새로운 무대에 도전한다.

"오디션을 본 이유는 제가 선수로 뛸 때는 항상 즐겁게 아이스링크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성적도 중요하고 준비한 것을 보여줘야했기 때문이죠. 항상 긴장 속에서 링크에 들어갔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즐겁고 자유롭게 제가 해 온 것(스케이팅)을 보여줄 수 있어서 지원했습니다."

이 공연은 지난해 강원도 강릉 하키센터에서 선보였다. 당시 해나 역은 전 국가대표 조경아(26)와 김하늘(21)이 연기했다. 지난해 좋은 반응을 얻은 지쇼는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목동아이스링크로 이동해 '앙코르 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임은수는 과거 아이스링크에서 함께 땀을 흘린 피겨 선수들과 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임은수가 맡은 주인공 해나의 상대역 '융'은 전 피겨 선수 안건형과 김현이 연기한다.

▲ 임은수가 아이스링크를 바라보고 있다. ⓒ광운대아이스링크, 조영준 기자

"선수 시절에는 어쨌든 다 경쟁해야 하는 관계였는데 지금은 공연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가 됐어요. 저는 처음으로 함께 완성해 가는 공연을 하다보니 처음에는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지금은 (동료들이) 든든한 점이 많습니다."

임은수는 공식 경기는 물론 아이스쇼에서도 풍부한 표정 연기와 무대 장악력으로 관중들의 갈채를 받았다. 당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리틀 연아'는 어느덧 뮤지컬 아이스쇼의 여주인공으로 찾아왔다.

"지금까지 저를 기억해 주시는 팬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제가 잘할 때 응원해 주신 분들도 감사하지만 제가 못했을 때도 응원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팬 분들 덕분에 위로도, 동기부여도 받았어요.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 (이번 공연으로) 빠른 시일 안에 찾아 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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