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이 된 교직… 젊은 교사들 떠난다 [심층기획-잠든 학생, 무력한 학교]
교사 84% “교권 약화로 지도 한계”
교실에선 문제아들과 감정 소모
밤낮없는 부모 민원전화 시달려
5년 차 미만 퇴직 1년 새 2배 늘어
어렵사리 교직 합격 꿈 이뤘지만
현장에서 ‘땅에 떨어진 교권’ 실감
분리수거·에어컨 필터도 교사 업무
“수업 혁신하라는데 연구도 힘들어”
‘다시 태어나도 선생님’ 20% 그쳐

경기지역 한 중학교 교사 A(28)씨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퇴직을 고민 중이란 글을 올렸다.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에 진학했고, 어렵게 임용시험까지 합격했지만 교사 업무는 만만치 않았다. ‘가르치는’ 일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반에 한두 명씩 있는 소위 ‘문제아’들과의 감정 소모, 밤낮없이 이어지는 학부모의 민원 전화가 그를 괴롭게 했다. 끝없는 행정업무는 덤이다.

세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공동으로 지난 5∼8일 고교 교사 8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교사의 83.9%는 교육활동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2개 선택)으로 ‘교권약화로 학생 지도 한계’를 꼽았다. 이어 ‘수업 외 업무 과중’(65.3%),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23.4%), 열악한 경제적 처우(17.7%) 등의 순이었다.


교사들은 만족도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로 ‘무너진 교권’을 들었다. 과거 학교는 소위 ‘촌지’를 받고 무차별적인 체벌을 하는 등 교사 권한이 과도하게 높아 문제였다면, 지금 학교는 교사가 아무런 힘이 없어 문제다. 경기 한 중학교 이모(48) 교사는 “아이들은 교사가 자신을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지시를 잘 따르는 아이에게 감사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씨는 “매년 우리 반에 문제아가 없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가 오면 1년 내내 끌려다닌다”고 토로했다. 서울지역 고교 교사 박모씨도 수년간의 교직 생활로 진이 다 빠진 상태다. 박 교사는 “수업시간에 교실에 안 들어가는 아이가 있어서 들어가라고 하면 ‘싫다’고 하고, 휴대전화를 달라고 하면 ‘선생님이 뭔데 가져가냐’고 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지도를 포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전지역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 잘못으로 선도위원회에 올라가자 학부모가 오랜 기간 괴롭혔다”며 “또 어떤 일로 민원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 민원 중재센터나 교사 보호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경기의 한 고교 교사는 “전화번호가 학부모에게 공지되니 밤늦은 시간이나 주말에도 수시로 전화가 온다. 몇 시간씩 항의와 하소연을 들으면 진이 빠지고 교직에 회의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는 “학부모로부터 시달린 교사는 트라우마가 생기고 ‘(학생 지도 등을) 열심히 하면 오히려 당한다’는 인식이 퍼진다”며 “학생의 문제행동 등을 강하게 제재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과중한 업무, 열악한 환경
과중한 업무도 교직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교사들은 출결과 체험학습신청서 등 많은 업무가 전자시스템이 아닌 수기로 관리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디지털 기기 관리부터 청소 등 학교의 각종 업무가 모두 교사에게 돌아온다고 하소연했다.
경기지역 고교 교사는 “매일 지각·조퇴·결석하는 아이가 몇 명씩 있는데 학부모들이 항의해 어지간하면 다 질병으로 처리해야 한다. 연락하고 서류 받느라 하루가 다 간다”며 “내가 교사인지 행정 처리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의 다른 중학교 교사는 “교육청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준 스마트 기기의 충전, 고장도 일일이 챙겨야 하고 교무실과 복도 청소는 물론 학교 쓰레기 분리수거, 하다못해 에어컨 필터관리도 교사가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사무실 청소하는 직장인이 어디 있느냐”며 “현재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교 교사도 “행정 업무가 많아 수업 준비는 퇴근 후 밤늦게 한다. 교육부는 수업을 혁신 하라는데 연구조차 하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교총은 “교육과 무관한 과도한 행정업무는 교원이 수업에 전념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폭언‧폭행 못지않은 교권침해”라며 “교육청 등으로 행정 업무를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노조도 “교사가 연구할 시간을 확보해주고, 수당 현실화로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며 “학교 교육력은 교사의 열정을 인위적으로 꺾지만 않아도 높아질 수 있다. 교육부가 교육개혁을 추진하려면 현장 교사들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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