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도미노 악재’… 씨 마른 거래에 피 마르는 중개사들 [심층기획]
주택 거래량 1년새 반토막… 일감 끊겨
무질서한 중개행위 여파 직업군 신뢰 ↓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서 매물 탐색 늘어
공인중개사 개업 규모 3개월 연속 감소
중개인 사고 이력 공개법 등 국회 계류
윤리강령 제정 등 자정 노력 시급 지적
경기 고양시에서 20년 넘게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해 온 홍모씨는 최근 사무실을 정리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원룸은 물론, 토지와 단독주택 중개에 두각을 나타내며 순수 중개수수료 수입만으로 억대 연봉을 달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2021년부터 수입이 급격히 줄면서 지난해부터는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매출이 급감했다.
김씨는 “군대에서부터 열심히 노력해 어렵게 자격증을 땄지만, 주변에서 개업을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최근 전세사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공인중개사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10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개업 공인중개사 규모는 올해 들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 2월 11만7857명이었던 개업 공인중개사수는 지난 5월 11만7431명으로 3개월 연속 줄었다. 중개사무소를 신규 개설하는 숫자보다 기존 사무소를 휴·폐업하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이다.
공인중개사가 중개업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입 감소다. 지난해 전국 주택 거래량은 50만8790건으로 2021년(101만5171건)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국토교통부가 주택 거래량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업계에서는 약 12만명에 달하는 개업 공인중개사 중 극소수가 연루됐다는 이유로 공인중개사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공인중개사 직업윤리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전세사기를 계기로 부동산 중개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 필요성을 인정해 5월부터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학계와 공인중개사단체 등도 참여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익이 나빠지니까 일부 소수의 공인중개사가 검은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생겨나게 되고, 그런 사례가 모여서 다시 부동산 중개시장 전체를 어지럽히고 공인중개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려서 다시 수익 감소를 심화하게 하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 3월 전세사기 방지 차원에서 공인중개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공인중개사가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 유예 기간이 끝나도 향후 2년간 활동할 수 없도록 ‘결격 기간’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를 비롯한 범죄에 연루됐을 때 사고 이력을 공개하거나 피해 금액을 몰수하고 추징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 등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인중개사의 고의나 과실로 인해 손해가 생겼을 때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공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인중개사는 손해배상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공제증권에 가입해야 하는데, 공제 한도는 1건당 2억원이다. 서울의 평균 주택 전세보증금이 6억원을 훌쩍 넘기는 상황에서 현행 한도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중개업계에서는 공인중개사에 대한 처벌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시장 질서를 유지하고 고객의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는 만큼 불법 행위를 내부적으로 단속하고 대응할 권한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에는 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로 지정하고, 협회에 단속·신고 권한 등을 부여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도 제출돼 있다.
박명주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정책특보는 “대한변호사협회는 의뢰인의 재판에 불출석해서 패소하게 한 변호사에 대해 최근 자격정지 1년을 의결해 통보했다”며 “몇몇의 일탈로 공인중개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공인중개사들이 현장에서 불법을 확인하고 방출시킬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인중개사의 권리 강화도 중요하지만,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정적 노력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김학환 숭실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 등 범죄를 저지르거나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는지 여부는 시세를 꿰고 있는 인근 지역의 공인중개사가 가장 잘 알 수 있다”며 “만시지탄이지만 공인중개사 내부 윤리강령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 실천해야 하고, 중개사무소 개설 전에 일정 기간의 수습 기간을 의무화하는 등 실무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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