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수백명이 버젓이…‘영업방’은 사기꾼들의 아지트였다[주가조작 ‘영업방’ 밀탐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들어가니
“수급” 시세조종 세력 모집 글에
‘보이스피싱’ 텔레마케터 구인
“주식 수급 진행합니다. 바로 진입하실 대표님은 몇개(몇억원) 가능한지 정확하게 알려주세요. 미팅 가능하고 무조건 당일 칼정산입니다.”
10일 오전 국내 주식시장 개장 직후. 카카오톡 오픈채팅 ‘The 홍보방’에는 “주식 수급을 진행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날 오후 특정 종목의 주가를 올리는 시세조종을 진행할 계획인데, 같이 매수에 나설 또 다른 세력을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채팅방 ‘영업자방’과 ‘홍보방’에는 주가조작부터 가상자산 사기까지 불공정거래와 사기를 업으로 삼는 ‘영업자’들 수백명이 모여 있다. 자금이 부족한 주가조작 세력이 시세조종을 같이할 또 다른 세력을 모집하기도 하고, 보이스피싱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업체가 텔레마케터를 구한다는 공고를 올리기도 한다. 사기꾼들만의 인력시장인 셈이다.
금융당국이 최근 “불공정거래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경고에 나섰지만, 사기꾼들만의 인력시장에는 범죄를 공모하는 글이 여전히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주가조작, 코인 사기…사기꾼들 집합소
영업자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은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모두 잡담이 주를 이루는 ‘영업자방’과 인력 모집 등 홍보글이 올라오는 ‘홍보방’으로 나뉘었다. 470여명이 있는 영업자방에 들어가자 공지에 게시된 링크를 통해 홍보방에도 쉽게 들어가볼 수 있었다.
홍보방에 올라오는 사기 종목은 다양했다. 영업자들 사이에서 ‘수급’이라고 순화돼 불리는 주가조작부터, 해외선물 사기, 코인 사기, 로또 사기 등 다양한 업에 종사하는 사기꾼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인력을 모집했다. 다만 홍보방에서도 제한적인 정보만 공유됐으며 홍보글을 보고 관심이 가면 텔레그램으로 일대일 채팅을 하는 식으로 소통이 이루어졌다.
영업자들은 외부인은 이해하기 어렵게 초성이나 줄임말로 이야기를 나눴다. 주가조작을 뜻하는 수급은 ‘ㅅㄱ’, 해외선물 사기는 ‘ㅎㅅ’, 대포폰은 ‘ㄷㅍ’ 등으로 줄여서 부르는 식이다. 이들은 새로운 사람이 영업자방에 들어오면 기자 혹은 경찰로 의심하며 ‘성공콜 인증’을 시키기도 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와 나눴던 통화 녹음 파일을 올려 영업자임을 인증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영업자 카톡방은 1개가 아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영업자’ 혹은 ‘유투’(유사투자자문업)를 검색하면 비슷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대화방 여러 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카카오톡 외에 텔레그램에도 비슷한 방이 있다.
개인정보·유심·SNS 계정 팔고
선물·코인·로또 사기까지 모의
당국 비웃듯 ‘불공정거래’ 만연
스팸문자 왜 이렇게 많이 오나 했더니
영업자방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소위 ‘데이터베이스(DB)’로 불리는 개인정보 파일이었다. 리딩방 사기도 코인 사기도 영업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전화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업자방에서는 “DB를 잘못 산 것 같다”며 한탄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DB업자’들은 이런 영업자들에게 불특정다수의 개인정보를 넘기고 돈을 버는 이들이다.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홍보방에는 DB업자들의 개인정보 판매 홍보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주식 리딩방 사기, 로또 사기, 해외선물 사기 등으로 용도를 분류해 개인정보를 판매하는 DB업자도 있었다.
개인정보는 얼마나 자세한지에 따라 전화번호 하나당 20~200원에 거래됐다. 홍보글을 올린 DB업자의 텔레그램 아이디로 연락해 가격을 문의하자 “문발(문자발송)용으로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는 파일은 5만건 이상은 건당 20원, 5만건 이하는 건당 25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또 다른 DB업자는 “고객의 이름, 주식 투자금 규모, 나이, 성별, 투자 성향, 손실종목 및 관심종목 등이 포함된 개인정보는 번호 1개당 200원”이라며 “1000건씩 팔고 있다”고 안내했다. 그는 ‘로스(loss)’가 있으면 AS를 해주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개인정보 1000건을 샀는데, 그중 100건의 정보가 틀렸을 경우 또 다른 개인정보 100개를 주겠다는 것이다.
사기에 필요한 모든 것
개인정보 외에도 불공정거래와 사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판매했다. 경찰과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휴대폰 유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판매한다는 홍보도 있었다. 400여명의 영업자가 모여 있는 한 홍보방은 홍보글이 하루에도 30~40개씩 올라오며 활발하게 운영됐다.
영업자를 모집하는 채용 공고도 있었다. 한 유사투자자문업체는 합법 업체라며 “법적 문제 0건인 정상영업을 한다. 월평균 급여는 500만~2000만원”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직접 연락해보니 채용 담당자는 “DB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서 회원 모집을 하는 일이다. 영업에 쓸 대포폰은 직접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 리딩방 사기에 쓰이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머릿수를 채우고 ‘바람잡이’ 역할을 할 유령 계정을 판매하는 업체도 홍보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오픈채팅 실행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PC카카오톡 계정을 판매하기도 하고 오픈채팅방 자체를 팔기도 했다. 이들은 리딩방 사기를 위해 운영되는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인원수를 채우는 것을 ‘유령작업’이라고 불렀다.
직접 연락해본 한 유령 계정 판매 업체는 “오픈채팅방 인원 100명을 채우는 데 6만5000원이다. 바람잡이를 할 카카오톡 계정은 하나당 1만3000원에 판매한다”고 안내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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