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지방은행 길 열렸지만, “현실성 없다”
은행법 적용하면 자본금, 주식 한도 제한
“지방은행 전환보다는 규제 완화가 우선”
금융 당국이 은행 과점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저축은행들은 현실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방은행으로 전환하면 은행법을 적용받게 돼 지배구조를 변경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방으로 진출할 경우 경쟁력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11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앞으로 저축은행은 자본금과 지배구조 등 지방은행 인가요건을 충족하면 지방은행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저축은행이 금융 당국에 전환을 신청하면 금융 당국은 요건 충족 여부를 심사해 전환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저축은행업계에서는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이 현실성이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2금융이 1금융으로 전환하는 것은 적용법과 고객군이 바뀌는 등 영업 환경 전반이 달라지는 사안이다”라며 “신청 회사가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SBI·OK·한국투자·웰컴·페퍼저축은행 등 상위 5개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방은행 전환에 대해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전했다.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저축은행이 지방은행으로 전환하면 은행법의 적용을 받는데, 이 경우 지방은행 인가요건을 충족할 만한 회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은행의 경우 자본금 250억원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또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 지분과 동일인 주식 보유 한도가 15% 이상을 넘을 수 없다. 반면 저축은행은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라 해당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 각 사 공시에 따르면 79개의 저축은행 중 지난 1분기 기준 자본금 250억원 이상을 보유한 저축은행은 32개였다. 업계에서는 저축은행이 지방에서 제도적 기반을 맞추기 위한 시스템 구축비용을 고려하면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데, 이 경우 요건을 충족하는 저축은행은 ▲SBI(1조5615억원) ▲한화(3080억원) ▲다올(2780억원) ▲우리금융(1240억원) ▲애큐온(1173억원) ▲하나(1154억9000만원) ▲IBK(1066억원) 저축은행 등 7곳에 불과했다.
한화·다올·애큐온 저축은행의 경우 산업자본 지분, 동일인 주식 보유 한도 요건이 15%를 초과해 지방은행 인가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SBI·우리금융·하나·IBK저축은행은 최대주주가 금융지주로 지방은행 전환을 위한 지배구조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이 저축은행들은 모회사가 시중은행을 운영하기에 굳이 지방은행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모회사가 금융지주가 아닌 이상 대부분 저축은행은 회장 지분율이 높은 곳이 많은데, 지방은행으로 전환을 원하면 지분 매각을 하거나 증자를 해야 한다”며 “지배구조를 바꾸면서 지방은행으로 전환을 검토하는 회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대부분 저축은행이 서울과 수도권을 영업지역으로 하는 상황에서 지방으로 진출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79개 저축은행은 영업지역을 ▲서울 ▲인천·경기 ▲부산·경남 ▲대구·경북·강원 ▲광주·전남·전북·제주 ▲대전·충남·충북 등 6개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는데, 대부분 대형 저축은행은 수도권에 거점을 두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저축은행 중 자본금이 1000억원이 넘는 곳은 부산에 있는 IBK저축은행과 충청권에 있는 우리금융저축은행뿐이다.
저축은행업계에서는 지방은행 전환보다도 규제 완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전반적으로 경영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해 영업 경쟁력을 확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중앙회 공시에 따르면 전체 79개 저축은행은 지난 1분기 52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5000억원 정도 순이익이 급감한 수치다.
현재 저축은행은 영업지역 내에서 가계·기업에 의무적으로 40%(수도권은 50%) 이상 대출을 공급해야 하는 규제를 받고 있다. 영업지역 내의 대출이 줄더라도 다른 지역 고객의 신규 대출 신청을 더 받지 못하는 구조다. 앞서 저축은행중앙회는 지방 저축은행 영업지역 의무대출 비율을 40%에서 30%로 완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시중은행보다 높은 예금보험료율도 저축은행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예금보험료란 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가 예금보험기금 조성을 위해 예금보험공사에 지불해야 하는 돈이다. 현재 금융기관의 표준 보험료율은 예금액 대비 은행이 0.08%, 증권사·보험사가 0.15%, 저축은행은 0.4%로, 저축은행 예보료율은 은행의 5배 수준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업계 전반의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은행 전환을 검토하는 회사는 없는 것 같다”며 “그보다도 저축은행이 2금융권으로서 서민 자본 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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