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떨어진 생산자 물가 vs 더디게 하락하는 소비자 물가[최정희의 이게머니]

최정희 2023. 7.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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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생산자 물가,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 하락
상반기엔 생산자 물가상승률, 소비자 물가 하회
생산자·소비자 물가 격차 만큼 기업 이익 증가…'그리드플레이션' 논란
생산자 물가 하락세, 소비자 물가에 얼마나 빨리 반영될지 관심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주요국의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올해 상반기부터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하회하고 있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향 안정 등에 따라 생산자 물가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반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견고한 고용·소비를 바탕으로 하락세가 더디다.

생산자와 소비자 물가 상승률간 격차가 커질수록 기업들의 이익 증가가 예상된다. 이는 ‘그리드플레이션’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드플레이션은 ‘탐욕(Greed)’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기업들이 원가 절감분을 제품·서비스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점을 비판하며 나온 용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만큼 올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업 마진’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韓·美 생산자 물가 0~1%대, 유로존·中은 마이너스

주요국의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유로존과 중국의 생산자 물가는 마이너스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유로존의 생산자 물가상승률은 작년 8월까지만 해도 전년동월비 43.4%를 기록했으나 그 뒤로 상승세가 빠르게 둔화, 올 5월엔 마이너스(-) 1.5%를 기록하는 드라마틱한 하락 흐름을 보였다. 중국은 작년 10월부터 생산자 물가가 하락세로 전환하더니 6월엔 5.4% 하락률을 보여 6개월 연속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생산자 물가상승률도 0~1%대로 낮아졌다. 우리나라 5월 생산자 물가상승률은 0.6%에 불과해 11개월째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 미국도 5월 1.1% 상승에 그쳐 이 역시 11개월째 둔화 흐름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생산자 물가의 가파른 둔화 흐름에 대해 “기저효과 영향도 일부 있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인한 각종 원자재 가격 하향 안정 때문”이라며 “중국의 디플레이션 현상도 주요국 생산자 물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높은 재고 수준이 생산자 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공급망 개선도 생산자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집계한 글로벌공급망압력지수(GSCPI)는 6월 마이너스(-) 1.2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말 0을 하회하고 있다.

출처: 각국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빠르게 하락한 데 반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하락세가 더디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둔화한 것은 주로 석유류 기저효과 영향일 뿐 최근의 생산자 물가 하락세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자 물가상승률은 작년 고점(작년 6월·10%) 대비 올 5월 9.4%포인트나 하락한 반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고점(작년 10월·6.3%) 대비 3.6%포인트 하락에 그쳤다. 미국과 유로존 역시 생산자 물가상승률은 작년 고점 대비 각각 10.6%포인트, 44.9%포인트 하락한 반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5.1%포인트씩 하락한 것에 불과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 하락세가 더딘 것은 주로 서비스 등 근원물가가 끈적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근원물가 상승률은 우리나라와 미국이 각각 작년 고점 대비 0.8%포인트, 1.3%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고용, 소비지표 등이 견고한 모습을 보이면서 수요가 물가상승률을 떠받쳐주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근원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작년 3월 8.1%에서 올 5월 0.2%로 크게 급락했음에도 소비자 근원물가 상승률 둔화는 크지 않았다.

“기업, 마진 그만 가져가라” 논란으로 번질 수도

생산자 물가상승률 둔화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떨어뜨릴 것으로 보이지만 두 물가지표간 격차가 커지거나 긴 시간 격차가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기 차이 때문이다. 제조업 부진은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서비스 업황은 비교적 견고해 수요 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앙은행이 수요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릴 만큼 올린 상황에서 물가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한 타깃은 ‘기업’이 될 수 있다. ‘그리드플레이션’이라는 용어로 원가 절감을 가격 인하에 반영하라든지 추후 발생할 원가 인상분을 마진에 흡수하라는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실제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달 국제 밀 시세에 맞춰 라면 값을 적정하게 내릴 필요가 있다고 압박했고 농심이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을 각각 50원, 100원 인하하기도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추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마진이 올라갔다. 기업들도 원자재 값이 떨어졌으니까 거기에 맞춰 고통을 같이 분담해달라는 취지”라며 공감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도 파스타 가격 인하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기업들을 향해 임금 인상분을 가격에 전가하지 말라는 요구도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는 4월 누계 기준으로 상용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전년동월비 2.3% 올라 지난해 같은 기간(6.1%)대비 상승률이 약해져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자극할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은 다르다. 미국의 경우 6월 시간당 임금이 전년동기대비 4.35% 상승해 임금 상승 압력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유로존 물가상승률의 45% 가량은 기업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유로존 물가 전망은 얼마나 기업이 임금 상승분을 흡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근로자들이 구매력 악화를 막기 위해 임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더 적은 마진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작년 물가상승 과정에서 기업이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면서 마진을 챙긴 만큼 임금 인상 등 추후 발생할 원가 부담에 대해선 가격 전가 대신 마진 감소를 택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최정희 (jhid02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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