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외치던 정부의 돌연 가격통제... "생색내기에 그쳐"

변태섭 2023. 7. 11. 04: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년여 만에 정반대가 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물가 발언이다.

정부가 가공식품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건 고공행진하는 가공식품 물가(7.5%·6월 기준)가 안정권(2.7%)에 접어든 전체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릴 뇌관이 될 수 있어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공식품 가격이 낮아져도 정부 기대(물가의 안정적인 관리)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출범 직후 "정부가 물가 통제하던 시대 지났다"
물가 고공행진에 잇따라 가격 인상 자제 압박
마지못해 줄줄이 인하했지만, 인하폭은 '찔끔'
5일 서울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라면을 구매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라면류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3.4% 급등했다.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4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뉴스1

“정부가 물가를 직접 통제하던 시대는 지났다.”(지난해 5월)

“기업들이 국제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가격을) 내렸으면 좋겠다.”(올해 6월)

1년여 만에 정반대가 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물가 발언이다. 자유 시장을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의 뒤바뀐 경제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반기 경기 반등에 집중하기 위한 전제조건(물가 안정)을 달성하고자 경제정책기조를 뒤엎은 것인데, 정작 체감물가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커 '서민 물가 챙긴다'는 생색내기에 그칠 거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 압박에 백기 투항한 기업들은 최근 연달아 식품 가격을 낮추고 있다. 농심은 이달 1일부터 신라면과 새우깡 출고가를 각 4.5%, 6.9% 인하했다. “밀 가격은 내렸는데 제품 가격이 높은 것에 대해 담합 가능성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한덕수 국무총리 발언(지난달 21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이번 조치로 소매점에서 1,000원에 판매되는 신라면 한 봉지는 50원, 1,500원인 새우깡 가격은 100원 안팎 낮아진다.

밀을 주재료로 하는 다른 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등 12개 제품 가격을 평균 4.8%, 오뚜기도 면류를 포함한 15개 제품 값을 5% 내렸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SPC그룹과 CJ푸드빌는 자발적으로 가격 인하에 동참했다.

라면 이전엔 소주·맥주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올해 2월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조짐으로 ‘소주 1병당 6,000원’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곧장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추 부총리가 “협조를 부탁한다”며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주무부서인 국체청까지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압박 강도를 높이자 결국 주류업계는 인상 계획을 보류했다.

정부가 가공식품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건 고공행진하는 가공식품 물가(7.5%·6월 기준)가 안정권(2.7%)에 접어든 전체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릴 뇌관이 될 수 있어서다. 품목별로 보면 라면은 지난달 13.4%, 빵은 11.%, 스낵과자는 10.5% 뛰었다.

정부의 ‘가격 통제’는 ‘승자 없는 게임’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우선 해당 품목이 전체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전체 1,000)를 보면 라면은 2.7, 소주 1.8, 빵은 6.5 수준에 그친다. 휴대전화료(31.2)와 휘발유(20.8), 전기요금(15.5), 시내버스료(7.4)에 비하면 가중치가 미비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공식품 가격이 낮아져도 정부 기대(물가의 안정적인 관리)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체감 물가가 큰 폭으로 개선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에서 “정부 압박과 여론에 떠밀린 가격 인하가 아닌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가격 인하를 해 달라”고 지적했다. 농심의 경우 지난해 9월 신라면(10.9%)을 포함한 라면 26개 품목의 가격을 올렸으나 이번엔 신라면 가격만 내렸다. 그마저도 인하폭은 상승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남은 건 생색내기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다른 가공식품 업계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정부가 서민물가 안정에 힘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외엔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