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대 못가면 해외서” 서인도제도·몽골 의대 준비반까지 생겼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헝가리 의대 준비 학원. 헝가리 의대에 다니는 재학생 두 명이 학원 수강생 10여 명에게 헝가리 의대 생활을 설명하고 있었다. 생물학, 화학 등 과목별 수업 일정 등을 소개했다. 학원 관계자는 “매년 100명 정도가 헝가리 의대에 진학한다”며 “현재 헝가리 4개 의대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은 600여 명 정도”라고 말했다. 헝가리 의대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1~2문제 차이로 국내 의대에 떨어지거나 의대 지원에는 부족한 수능 2~3등급 학생이 많다고 한다.
국내 ‘의대 몸살’이 해외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내 의대 입시가 극도로 치열해지면서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국내 의사 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외국 의대로 몰리는 것이다. ‘복지부 장관 인정’ 외국 의대 졸업자로서 해당 국가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국내 의사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국내 의대 졸업자와 달리 ‘예비 시험’을 먼저 통과해야 정식 의사고시를 치를 수 있다. 국내 의사 면허를 딴 외국 의대 졸업생은 국내 의대 출신과 마찬가지로 대학 병원에서 수련하고 전문의도 취득할 수 있다.
1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5년간 외국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한 사람은 총 170명이다. 이 중 142명이 합격했다. 83.5%의 합격률이다. 2001년부터 2023년까지 23년 동안 외국 의대 출신 의사 합격자는 247명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인 142명이 최근 5년 내 배출된 것이다. 2020년 20명, 2022년 35명으로 증가 추세다.
외국 의대 중엔 헝가리가 인기다. 구술 시험과 문법영어·의학영어·생물·화학 등 4개 과목의 절대 평가로 신입생을 뽑기 때문에 입학 난도가 높지 않다. 한국 학생 중 최근 5년간 총 86명이 국내 의사고시에 응시해 73명이 합격했다. 약 85%의 합격률이다. 그러나 헝가리에서 공부한 김지영 숭실대 교수는 “헝가리 의대는 입학은 쉬워도 학년 승급과 졸업이 상당히 어렵다”며 “언어와 현지 적응 문제로 학교를 자퇴하는 등 방황하는 유학생도 적지 않다”고 했다. 한국 의대 졸업생과 달리 의사고시 시험 ‘족보’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몽골과 동유럽권 의대 준비반도 있다. 강남구의 한 학원은 홈페이지에 ‘몽골국립의대 본과 입학 보장’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서초구의 한 학원은 ‘체코 마샤릭 의대’ ‘프라하 찰스 의대’ 등 입학을 위한 전문 교육을 진행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서인도 제도 의대’를 연결하는 유학원까지 등장했다. 쿠바 동남쪽에 위치한 영연방 소속 ‘그레나다’의 세인트 조지 국제의대는 고등학교 성적과 면접으로 의대 학생들을 선발한다. 작년 기준 세인트 조지 국제의대에 재학 중인 한국인은 77명이라고 한다. 이미 졸업한 한국인도 83명이다. 세인트 조지 국제의대도 한국 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외국 의대이기 때문에 졸업생은 국내 의사 고시를 치를 수 있다.
해외 의대가 주목받자 해외 의대 졸업생의 의사고시 응시를 제한해야 한다는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작년 4월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공의모)’은 헝가리 의대 졸업생의 국내 의사고시 자격을 인정하면 안 된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국내 의대 졸업생의 기회가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각하했다.
‘의대 몸살’이 해외까지 번진 것은 국내 의대 정원이 18년째 3058명으로 묶인 것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숫자(2.5명)는 OECD 평균(3.6명)에 미치지 못한다. 복지부가 개최한 ‘전문가 포럼’에선 2050년 국내 의사 수가 2만2000명 부족하기 때문에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의대 정원을 5%씩 증원해야 한다는 추계도 나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대 가려는 학생은 많고, 의사도 필요한데 국내 의대 증원이 안 되다 보니 해외 의대까지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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