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만 사줘도 고발하는 선관위, 직원 128명 금품 받거나 공짜 여행

김경필 기자 2023. 7. 11.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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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청탁금지법 위반 대거 적발
선관위원들은 위법 수당 6억 받아
일러스트=박상훈

감사원은 10일 전국 시·군·구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128명이 청탁금지법을 위반해 금품을 받거나 해외여행 경비를 지원받고, 노정희·노태악 대법관 등 전·현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매달 200여 만원의 위법한 수당을 받았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의 중앙선관위 및 지방 선관위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선거에서 후보들의 식사 한 끼 제공이나 경력 한 줄까지 철저하게 감시하는 선관위가 정작 본인들에겐 한없이 관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전국 249개 시·군·구 선관위 직원 1925명 가운데 128명(6.6%)이 청탁금지법을 어기고 금품을 받았다. 시·군·구 선관위는 비상임인 선관위원들이 회의에 참석하면 1인당 6만원의 회의 참석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35개 선관위는 이 수당을 각 위원에게 지급하는 대신, ‘총무’ 역할을 맡은 위원 1명에게 몰아주고, ‘부서비’처럼 쌓아두게 했다. 그러고는 사무국장 등 선관위 직원들이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는 데 썼다.

한 직원은 지난해 7월 1일부터 2박 3일간 제주도로 골프 여행을 가면서 경비 150만원을 선관위원 수당에서 충당했다. 이렇게 국내나 일본·필리핀·베트남·태국 등 해외로 여행을 가는 데 선관위원 수당을 받아 쓴 직원이 20명이었다. 118명은 ‘회식비’ ‘간식비’ ‘명절 격려금’ ‘전별금’ 등의 명목으로 수십만원을 받았다. ‘건강 쾌유’를 명목으로 20만원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선관위 직원들이 선관위원들 앞으로 나온 수당을 제 돈처럼 쓴 것에 대해, 감사원은 지방 선관위원들이 선거에 출마하면서 선관위 직원들의 감독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각 시·군·구 선관위 위원 9명 중 3명은 각 정당이 추천한 인사로 임명되는데, 그렇다 보니 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이 위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나중에 출마했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선관위원 재직 시절에 돈을 써서 선관위 직원들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것이다.

선관위 직원들의 금품 수수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과태료 등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내부 게시판에 ‘선관위원이 소속 사무처 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경우 금액 제한 없이 가능하다’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상급 공직자가 하급 공직자에게 위로·격려·포상 등의 목적으로 금품을 주는 것은 허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 선관위원들은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는 비상임 명예직 위원들이 대다수여서 청탁금지법상 공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또 국내외 여행은 공무 수행과도 관계가 없다. 중앙선관위가 청탁금지법 유권해석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의해 보지도 않고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임의로 해석해 공지한 것이다.

중앙선관위 위원장과 위원들도 부당하게 수당을 받았다. 선관위법에 따르면 중앙선관위 위원 9명 중 위원장을 포함한 8명은 비상임이어서 보수를 받을 수 없고, 회의 참석이나 선거 사무를 한 날에 한해 일비·실비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명선거 추진 활동 수당’이라는 명목으로 매달 위원장에게는 290만원, 비상임 위원에게는 215만원을 줬다.

감사원은 2019년 감사에서 이런 수당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중앙선관위에 수당 지급을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매년 기재부에 예산을 신청하면서 ‘감사원 등 외부 기관으로부터 아무 지적을 받지 않았다’고 거짓으로 적어 제출했고, 기재부는 매년 예산을 편성해 줬다. 이런 식으로 중앙선관위는 2019년 감사원 감사 이후 지난해까지 예산 6억5000여 만원을 부당하게 타내 위원들에게 줬다. 중앙선관위는 감사원이 지난해 말부터 이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자 그제야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선관위는 극히 엄격한 선거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선거법 조문은 340여 개에 달하고 이 가운데 하나만 위반해도 중한 처벌이 내려진다. 유권자들은 선거 출마 예정자로부터 밥 한 끼만 잘못 얻어먹어도 선관위에 의해 고발돼 밥값의 최대 50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내야 하고, 공직에 선출된 사람은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만 선고받아도 직을 상실하고 5년간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게 된다.

선거사무소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통닭이나 짜장면을 대접해도 식사 제공으로 처벌될 수 있다. 선거사무 관계자 외에 자원봉사자 등에게는 어떤 격려금이나 회식비, 교통비, 선물도 제공할 수 없다. 간고등어, 감귤 등의 간단한 선물을 돌렸다가 당선 무효가 된 사람들도 많다. 또 ‘하버드 대학원 졸업’이라고 홍보물에 적었지만, 대학원 과정이 ‘1년’이었다는 설명을 뺐다는 이유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경우도 있다. 이런 법을 다루는 선관위가 정작 내부의 비위에는 관대했던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진행한 경력직 채용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중앙선관위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한 23회의 경력직 채용 서류 전형에서 응시자들의 경력에 점수를 잘못 부여한 경우가 57건에 달했다. 이들은 받았어야 할 점수보다 낮거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중앙선관위가 감사원에 제출한 ‘소쿠리 투표’ 자체 조사 결과에선 선거관리의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다. 중앙선관위 사무처는 사전투표 일주일 전인 지난해 2월 25일에야 코로나 확진·격리자의 사전투표 계획을 지방 선관위에 전달했고, 투표용지 운반 용기는 각 선관위가 알아서 준비하게 했다. 그 결과, 바구니나 종이 상자가 투표용지 운반에 쓰이는 일이 벌어졌다. 또 코로나 확진자 투표소가 얼마나 혼잡해질지, 투표에 얼마나 걸릴지 등에 관한 사전 분석을 하지도 않았다. 투표 사무원이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함에 ‘대리 투입’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었는데도 이에 대한 법률 검토도 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는 감사원 지적에 대해 “선관위원들이 소속 직원에게 격려금 등을 지급하는 것은 하급 직원에 대한 위로·격려로 보아 청탁금지법상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고, 다만 해외여행은 사회 통념상 지나친 점이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며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 위원장과 비상임 위원들이 법적 근거 없이 수당을 받아온 것에 대해선 “선관위법을 개정해 지급 근거를 명확히 하려고 했으나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올해 1월부터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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