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충수염이 매우 위험한 병이 된 세상

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 2023. 7.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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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

전설적인 탈출의 명수 해리 후디니(1874~1926)는 찰리 채플린, 스텐 로렐, 올리버 하디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예능인으로 유명세를 날렸다. 손발에 수갑을 차고 구속복을 입은 위에 다시 온몸을 꽁꽁 묶고는 쇠사슬을 감은 나무 상자에 갇힌 채로 뉴욕항의 바다에 던져진 그는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유유히 헤엄쳐 나오는 모습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강철 같은 그의 몸은 웬만큼 큰 타격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그림= 서상균 기자


후디니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공연장 대기실에서 한 학생이 정말 배를 아무리 세게 맞아도 견딜 수 있느냐 물으며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했다. 후디니가 허락하자마자 학생은 힘껏 그의 배를 때렸고 평소와 달리 아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날 디트로이트로 이동한 그는 심한 복통과 고열을 견디며 공연 연습을 했고 이틀 뒤 생애 마지막 공연을 마쳤다. 공연 다음 날 병원을 찾았고 디트로이트의 의사는 배를 만져보자 즉시 수술을 결정했다. 후디니의 병은 충수 천공에 의한 복막염이었다. 수술에도 불구하고 염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패혈증에 빠진 그는 4일 뒤 다시 개복해서 씻어내야 했고, 2차 수술 뒤 이틀 만에 사망했다. 후디니가 몬트리올에서 바로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았다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충수는 소화기관 중 소장이 끝나는 지점에 대장과 연결되는 맹장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벌레와 같이 생겨서 충수라 이름을 붙였다. 크기는 약 6, 7㎝ 정도 되고 속은 비어있다. 충수의 역할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장내 유익한 세균의 저장과 재생성을 돕거나 소화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면역 기능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충수염은 사실 굉장히 흔하고 위험한 병이다. 복막염의 원인 중 가장 많다. 사람은 평생 7, 8%가 충수염을 겪는다. 충수염이 발생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며칠 내에 천공이 발생한다. 천공이 되면 장의 내용물이 뱃속에 쏟아져 복막염으로 진행되고 얼마 못 가서 사망한다. 18세기에 부검을 통해서 복통으로 죽은 사람의 원인으로 충수염의 실체가 알려졌다. 1887년 토머스 모턴이 최초로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이후로 충수염으로 사람이 죽는 일은 줄어들었다.

전형적인 충수염의 증상은 상 복부 중앙의 통증으로 시작한다. 하루 이틀 지나면 통증은 배의 오른쪽 아래로 향하고 발열, 식욕부진, 가스 팽만, 장폐색과 함께 몸에 손을 대면 아파서 견디기 어렵게 된다. 의사는 반동 압통이 있으면 복막염 증상이 있다 생각하고 수술을 결정하게 된다.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하면 금방 회복된다.

증상이 애매한 경우도 많다. 충수가 우측 결장(맹장)의 뒤 쪽으로 박혀서 염증이 생겨도 확산되지 않고 기분 나쁜 증상이 상당기간 지속되기도 한다. 일주일 혹은 한 달 가까이 버티다 못한 염증이 농양을 형성하고 터지면서 패혈증으로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섣불리 항생제를 쓰다 오른쪽 대장이 괴사하는 수도 있다. 독한 세균으로 인한 염증이 배 뒤쪽의 근육의 막을 타고 퍼지면 수술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수도 있다. 수술에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인이 한 대학병원에서 충수염 수술을 받고는 몇 달째 고생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초기 진단에 실패한 중학교 동기는 우측 대장을 다 덜어내는 대수술을 받고는 열흘 넘게 입원하기도 했다.

후디니를 때렸던 학생은 가해자로 오해받아 검찰이 조사했으나 본인의 동의하에 복부를 가격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로 중상해죄나 살인죄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후디니의 충수염이 복부의 가격으로 발생한 것이 아님은 자명하지만 당시의 무지한 상황에서 생긴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였다.


젊은 세대 의사의 탈(脫) 필수의료 현상이 오래됐다. 신규 외과의사 부족을 이유로 몇 대학병원에서 충수염 응급수술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칫하면 충수염으로 사망하는 환자가 늘어날 수 있다 생각하니 충수염도 매우 위험한 병이 되었다. 충수염의 특징 증상을 잘 기억해서 느낌이 좋지 않으면 하루빨리 진료받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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