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 현장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있다

기자 2023. 7.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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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활동가로 사는 일은 고단하다. 한때 정부가 69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려고 할 때 중견 활동가들이 모였다. “주 69시간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중론이었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활동가들은 일한다. 워낙 일이 넘쳐나고, 활동가는 부족하기 때문에 일은 늘 밀려있고, 쌓여있다.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 일도 힘들고, 사건을 사회적 의제로 이끌어내기 위한 기자회견, 토론회를 해야 하고, 집회와 농성을 준비하고, 정책도 만들어낸다. 1년 차 변호사, 교수가 토론회 자리에서 발제를 하는 동안 10년 차 활동가는 원고를 사정해서 받고 복사물도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활동가의 지위가 낮은 곳도 없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욕도 참 많이 먹는 게 활동가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요즘은 단체에서 활동할 신입 활동가를 구하기도 힘들다. 청년들일수록 기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뜻이 있는 청년들도 활동가 급여 수준을 얘기하면 돌아선다. 겨우 최저임금을 넘기는 수준의 급여를 받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단체의 사정이 어렵다 보니 활동가는 여기저기서 손 벌리고 돈을 만들어와야 한다. 딱한 사정을 하는 다른 단체에서 ‘후원의 밤’이니 정기후원을 부탁하면 지갑을 열어야 한다. 나도 정기후원을 하는 단체만 한때 50곳을 넘겼던 적도 있다.

현실 제대로 보고 비판해달라

그렇게 30년을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다가 퇴직한 한 후배의 소식을 들었다. 경제적 사정이 아주 안 좋은데 빚까지 져서 힘들다고 한다. 노후를 위한 준비는커녕 당장 먹거리를 해결할 방안이 막막하다는 얘기를 아프게 들어야 했다. 시민단체의 리더로 활동하다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이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고된 활동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이 있다.

요즘엔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 시민단체 때리기를 하는데 그에 편승해서 숟가락 얹는 인사들의 칼럼이나 글을 많이 본다. 시민단체에 대한 평판이 많이 나빠졌고, 위상도 약화된 것은 맞지만 시민단체를 비판하려면 최소한 정부가 몰아가는 발표에 의존하지 말고 제대로 현실을 보고 비판했으면 한다.

먼저 정부가 말하는 ‘민간단체’에는 과거부터 관변단체로 지원을 우선적으로 크게 받아온 유명한 단체들도 포함돼 있고, 뉴라이트 계열의 우익 단체들도 포함돼 있다.

시민단체에는 몇 년 전에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어금니 아빠’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 사적인 이익을 충당한 그런 단체들도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이런 구분 없이 어떤 조사를 하거나 그걸 근거로 해서 시민단체를 매도하는 일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지르고,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들을 탈탈 털어서 조사해놓고는 문제가 되는 단체들을 익명처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로부터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는 경우에도 그렇다. 회계 처리가 지나칠 정도로 까다롭고, 내부·외부감사까지 받아야 한다. 요구하는 행정절차와 서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소수의 활동가로 유지되는 단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니 보조금, 지원금을 받아서 일을 하다 보면 곧 후회를 한다. 돈 있으면 절대 안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럼에도 회계부정을 저지르는 단체가 있다면 그 노하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민주주의 사회일수록 시민사회가 강하다. 활성화돼 있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시민사회를 인정하고, 그들의 말에 경청하며, 협치를 실현한다. 시민단체들의 활동과 성장을 돕는 정부 기관이 있는 나라도 있다. 그만큼 시민사회는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일을 한다. 그런 활동가들이 재정을 걱정하지 않고,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을 할 수 있으면 그 사회는 더욱 민주화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활동 조건 고민했으면

“진보는 보조금으로 오지 않는다”고 훈수 두시는 분들은 먼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보시길 권한다. 시민사회도 성찰하고, 재정적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분발해야 한다. 그와 함께 비난에 앞서 시민단체가,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활동 조건을 만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민사회가 약화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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