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원전 중심 세계관의 충돌을 상정하는 싸움
대학 시절의 일이다. 순대 한 알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누군가 그걸 주워 몇 번 털더니 멀쩡한 순대와 뒤섞었다. 그러고는 “괜찮아! 먹어도 안 죽어!”라고 했다. 정상적인 위생관념으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어서 크게 당황했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었다는 이유로 죽을 확률이 매우 작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떨어진 음식을 버리는 것보다는 먹는 게 어떤 사고체계에선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다만 심리적 저항감이 문제인데, 이걸 오염이 되지 않은 음식과 뒤섞어 선별할 수 없게 만드는 걸로 해결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묘수인데, 또 달리 생각하면 괘씸하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었던 기억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마실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그때의 “괜찮아! 안 죽어!”를 떠올렸다. 오염수 방류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사람들은 이런 식의 논법을 즐겨 사용하는데, 바나나와 멸치가 주로 활용된다. 최근에는 ‘세슘 우럭’도 한 번 먹는 거라면 문제없다는 취지의 얘기도 나왔다.
자꾸 ‘괴담’이라고 하니 분명히 말하건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된다고 해서 누가 죽거나 건강을 해칠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장기간의 오염수 방류가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확실히 모르고, 만에 하나 부정적 영향이 있다면 방류 이후엔 되돌릴 수 없으니, 시간을 두고 남은 의문을 해소한 후에 결정하면 어떻겠느냐고 일본 정부에 말해보자는 거다. 오염수를 임시 저장할 부지도 아직 남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오염수 방류 여부는 일본 정부가 최종 권한을 갖는 것이므로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그런 태도로 접근해야 방류 이후에라도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으로 추적·감시·연구하자는 논리의 정당성이 강화되고,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와 관련한 쟁점에 있어서도 좀 더 편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게 아닌가?
언론에는 자기들만 과학이고 남들은 ‘괴담’이란 식의 주장을 펼치는 인사들의 발언이 주로 인용되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그런 태도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만 난리라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바보라서 가만히 있겠느냐고 쏘아 붙이는 이도 있는데,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우려가 제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해외 언론은 대개 우려와 낙관을 균형있게 소개한다.
오히려 한국에서만 반대 의견을 ‘괴담’ 취급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를 따져야 할 판인데, 총선을 겨냥한 프레임 전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염수 방류 찬반 전선에는 한·일관계, 안보 및 에너지 정책, 생명과 안전 등에 관한 일반적 불안감이 몰려 있다. 양대 정파가 모든 화력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고지인 셈이다.
이런 정치적 사정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괜찮아! 안 죽어!”란 말에는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비효율보다는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 효율을 추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삼중수소는 한국 원전에서도 배출된다” “100년간 마셔도 엑스레이 한 번 찍는 것만 못하다”라는 주장에서 ‘과학 대 괴담’ 구도의 이러한 본질이 드러난다.
앞선 사례에서 삼중수소 배출과 방사능 노출은 전기 생산과 건강 상태 확인을 위해 우리가 감수하기로 한 손해이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무엇을 위해 감수하는 손해인가? 효율성을 극단으로 추구하는 원전 중심 세계관의 정당성을 영속적으로 획득하는 것 외엔 없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그야말로 세계관의 충돌을 상정하는 싸움이다. 이제 이렇게 물어보자. 당신은 “괜찮아! 안 죽어!” 세계의 일원인가? 이 답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지만, 낙관할 수 없다. 이게 우리가 직면해 있는 진정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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