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마려운 사람들
‘마렵다’가 유행어 될 정도
참지 않고 함부로 쏟아내는
거리의 만연한 방종 막아야
역겨움은 슬픔을 동반한다. 구역질할 때 약간의 눈물이 고이듯이.
자정 무렵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 보도 위에서 한 남성이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무심코 그 옆을 지나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는 통화를 하면서 동시에 옆 화단 쪽으로 소변을 누는 중이었다. 목소리에 취기도 없었고, 무엇보다 도저히 노상 방뇨를 시도하기 힘든 개방된 공간이었기에, 나는 약간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제정신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혹은 욕구 조절을 방해하는 난감한 질환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못볼 꼴을 모면하려 있는 힘껏 안구를 조절하면서, 나는 지금이 2023년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떠올렸다.
수치심은 사회적 문제다. 동대문구청에는 지난 두 달간 100건에 달하는 노상방뇨 관련 온라인 민원이 접수됐다. 서울 복판 종로구 탑골공원 담벼락도 오줌에 절여지고 있다. 이곳 북문(北門) 일대의 오염 양상은 그간 세차게 고양된 21세기 한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머쓱하게 한다. 오며가며 동네 식당 주인들과 몇차례 말을 섞은 적이 있다. 오줌 지린내가 코를 찔러 아침마다 물청소를 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공원 안에도, 코앞 지하철역이나 낙원상가에도 공용 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거리에서 바지춤을 내린다. 귀찮은 것이다. 스스로를 끌어내리는 이 게으름 앞에서 법과 경고문은 있으나 마나다. 이러라고 100년 전 조상들이 여기서 3·1운동을 벌인 게 아닐 것이다.
‘마렵다’는 말이 얼마 전부터 널리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참을 수 없다는, 극단적 갈망의 강조법으로 사용된다. 배고파지면 ‘야식 마렵다’고 하거나, 누군가를 때리고 싶을 때 ‘주먹 마렵다’고 쓰는 식이다. 언어라는 게 본디 재미를 바탕으로 생성되고 또 소멸하는 것이지만, 이 만연한 ‘마려움’의 용례에서 우리 사회의 어떤 병적인 징후를 포착하게 된다. 기다리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것을 창피해하지 않는 것. 이 모든 방종의 자세가 악취를 퍼뜨린다. 비위 상하는 물건을 내밀고 정신 보건을 위협한다. 전정가위 마렵다.
조급함이 정신의 괄약근을 조금씩 망가뜨리고 있다. 용산에서 서울역에서 광화문에서, 멀끔한 차림으로 거의 매주 일련의 집단적 노상 방뇨가 이뤄진다. 버젓이 해우소가 존재해도, 이제는 그냥 거리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궐기·집회·대회·운동 등의 요란한 몸짓으로 정제되지 않은 결론을 길바닥에 무단 방류한다.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관심이 마렵고, 또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볼일을 본 뒤 손을 씻는 행위를 포함해 오랜 세월 이른바 ‘문화’라 불려온 절차는 무시되고 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방광에서 바로 쏟아낸 오염수는 다음 날 선동과 반목의 흉측한 자국을 남긴다. 반복될수록 광장은 오염되고 있다. 광장만 보이면 벌써부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노상 방뇨의 진짜 폐해는 이것이다.
공공에 오염을 전가하는 유형일수록 자신의 안위에는 살뜰한 경우가 많다. 지난 1월 영국 런던의 소호 거리 일부 담벼락에는 초소수성(超疏水性) 페인트가 칠해졌다. 물기를 전부 튕겨내는 특수 용액을 벽면에 발라, 노상 방뇨 즉시 모든 오줌 줄기를 옴팡 뒤집어쓰게 함으로써 비위생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이탈리아는 적발 시 벌금을 최대 1200만원까지 때린다. 자기가 배출한 오물에 자기 몸이 젖고, 더는 사소한 기행으로 간주되지 않을 때 비로소 무책임한 오줌보는 긴장할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눈물만이 아니라는 경구를 화장실 밖에도 써붙여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눈물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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