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오염수와 사회적 갈등의 본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투기를) 추진하는 이들은 투기를 해도 해양과 인간의 건강에 안전하다는 것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보여주었는가? 대답은 ‘아니요’이다.”
“(오염수 투기가) 태평양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자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달 22일 실린 해설 기사에 담긴 로버트 리치먼드 미국 하와이대 마노아캠퍼스 해양생물학 교수가 한 얘기다. 후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지난 5월25일 게재한 기사에 포함된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 해양환경방사능센터의 해양방사화학자 켄 뷰슬러의 발언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의 해양 투기와 관련해 신기하리만큼 외면당하고 있는 목소리가 있다. 네이처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것과 같은 오염수 해양 투기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다. “기준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마시고, 목욕도 하겠다”는 등 안전성을 강변하는 과학자나 국제기구, 정치인들의 지나치게 큰 목소리에 가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들이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와 관련해 제기되는 우려를 ‘괴담’이라 치부하며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강변할 수 있는 것에도 해외 과학자들의 이러한 경고들이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해외 과학자들의 우려뿐 아니라 지난해 12월 미국 해양연구소협회가 발표한 반대성명,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가 지난 5월15일 발표한 ‘태평양은 방사능 폐기물 처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 등은 과학계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해외 과학자들의 경고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일본의 “안전하다”는 주장은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과 예상치 못한 위험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기사에는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저농도 방사능 측정 전문가 페렌츠 달노키베레스가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물질 제거에 사용하려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의 신뢰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염수에) 무엇이 들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고 말한 내용이 있다. “도쿄전력은 저장탱크의 4분의 1에서만 소량의 물을 채취해 농도를 측정했을 뿐”이며 “여과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미국 해양연구소협회도 성명에서 “일본의 안전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적절하고, 정확한 과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양 투기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해외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차분히 살펴보면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의 안전성 문제는 일부의 주장처럼 ‘과학’ 대 ‘괴담’의 대립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일본 정부 입장에 경도돼 과학적 불확실성을 무시하는 과학자, 정치가들의 기만행위와 반대로 상식과 양심을 갖춘 과학자, 시민들의 인류와 해양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 사이의 간극이 바로 오염수 해양 투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본질일 것이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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