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다큐멘터리 재미있나요?
영화제를 기획하고 작품을 선정하는 프로그래머로서 1년에 몇 편 정도 영화를 보는지 질문을 받는다. 정확한 숫자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300편 이상의 장편, 만약 단편을 합치면 500편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관이 없는 도시에서 자란 어린 시절엔 영화를 원 없이 보는 것이 꿈이었건만 이렇게 많이 볼 줄이야.... 문제는 내가 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프로그래머라는 사실. 몰입감 높은 이야기와 멋지고 예쁜 배우들이 가득한 극영화도 몇 편을 연달아 보면 지치기 마련인데 다큐멘터리라면 어떻겠는가. 이런 나를 걱정하는 것인지, 시험하는 것인지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다큐멘터리, 재미있나요? 주저 않고 “그럼요, 재미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나는 다른 대답을 들려준다.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있다고.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영화를 보는 것은 일면 미식과 유사한 점이 많다. 풍토와 재료, 고유한 식사법을 잘 알수록 음식이나 술의 맛을 잘 즐길 수 있다. 말하자면 잘 먹고 마시기 위한 훈련이 필요한 셈이다. 영화도 그렇다. 역사와 소재, 접근 방법을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재미는 커진다. 물론 그러려면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보면서,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냥 내 취향에 맞는 재미있는 영화만 찾아보면 되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내 입맛에 맞는 음식만 먹고 살면 결국 편식이 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큐멘터리의 진입 장벽은 꽤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땐 내 안에 잠자고 있던 학구열이나 시민 의식에 호소하는 것도 방법이다. 생각해 보라. 다큐멘터리 영화는 짧게는 1~2년, 길게는 10여년의 제작을 거쳐 (통상)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제작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큐멘터리는 제작진의 지식과 고민을 쥐어짜낸 정수인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밀도와 선도가 높은 마음의 양식인 셈이다. 또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회의 가장 첨예한 갈등이나 이슈의 현장을 보여준다. 출연진은 대개 자신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변화가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 제작을 수락한다. 그리고 제작진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러니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바람에 조금은 응답하는 것이며 소박한 실천이 될 수 있다.
마침 지금 극장에 다양한 관심사를 만족시킬 만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걸려 있다. 개발로 위협을 받지만 끈질기게 이어지는 생명의 위대함을 담아낸 ‘수라’, 서해안의 소도시 군산에 새겨진 식민과 전쟁, 개발의 역사를 그린 ‘군산전기’, 은폐되고 묻혀 버린 6·25전쟁의 진실을 발굴하는 시민 발굴단을 따라가는 ‘206:사라지지 않는’이 그것. 잠시 시간을 내 극장에 들러보는 것이 어떨까.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눌 누군가를 데려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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