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싹둑 잘린 주먹구구 예산... 배추장수도 이런 회계 안 한다
전자칠판은 전통적인 칠판의 기능을 디지털화한 대형 스크린의 일종이다. 분필 대신 디지타이저 펜으로 글과 그림을 그리며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인천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의 전자칠판 도입 예산을 주먹구구식으로 짰다가 망신을 자초했다고 한다. 인천시의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관련 예산의 절반 이상을 삭감당했다. 각급 학교에서 전자칠판을 구입하기 위해 사전에 조사해 보는 견적서 하나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자칠판 구입에 들어가는 돈도 시민들이 땀 흘려 벌어 바친 세금이다. 국민 세금을 얼마나 허투루 보면 이런 예산 업무를 다 하나.
시교육청은 지난달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전자칠판 구입을 위해 14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인천 초·중·고교 96곳의 전자칠판 1천293대와 유치원 16곳의 전자칠판 102대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시교육청은 전자칠판의 구입 단가를 아무런 근거 자료 없이 일괄적으로 책정했다. 초·중·고교는 1대당 1천만원, 유치원은 1대당 600만원 등이다. 학교가 조달청을 통해 선택하는 전자칠판은 기종마다 가격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또 전자교탁, 보조장, 보조칠판 등의 설치 여부나 사용하던 칠판의 철거 및 폐기 비용도 교실마다 다르다.
이런데도 시교육청은 학교들로부터 주먹구구식으로 전자칠판 신청을 받았다. 최소한의 근거 자료인 견적서는 물론 구체적인 전자칠판 설치 계획 등을 전혀 받지 않았다. 한 학교의 경우 전자칠판 4대를 신청하면서 시교육청에 4천만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추경 작업을 끝내고 시교육청이 자체 조사해보니 전자칠판 4대는 1천980만원이었다. 여기에 전자교탁 4대 1천630만원, 거치대 1대 65만원, 나라장터 수수료 및 배달 비용 198만원 등을 보태니 총 3천870만원이었다.
시의회는 시교육청의 이런 예산안에 대해 해당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140억원 중 절반이 넘는 80억9천200만원(57.8%)이다. 그러면서 시의회는 학교마다 정확하게 견적 등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예산 추계를 할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형태의 예산 편성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도 했다.
시교육청 측은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급히 추경을 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앞으로는 학생들에게 선도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치밀하게 조사한 후 예산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현재 교육재정은 불합리한 측면이 많다. 채 쓰지 못하는 불용액이 매년 쌓여 가는 지경이다. 깜깜이 전자칠판 예산도 이 때문인가. 시장의 배추장수도 이런 회계는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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