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압축성장 뒤에 드리운 그늘
압축성장이란 짧은 기간 동안 이룬 급격한 경제성장을 일컫는다. 주로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서방 강국들을 단기간에 따라잡은 국가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나 조직이 튼튼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 김진경은 “한국은 1960년대 이래 30년 동안 서구의 300년을 압축해 따라갔다. 무서운 속도의 서구 흉내내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았고 필요한 일로도 간주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초고속 성장하면서 소홀했던 것과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행복지수·저출생 등은 세계 최하위권에서 맴돌고 있고, 자살률·노인 빈곤율 등은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경제가 성장한 만큼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스웨덴 생태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행복의 경제학>에서 “경제성장이 곧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다. 한국형 위성발사체 누리호를 자체 기술로 쏘아 올린 과학기술력이 있고, K팝이나 영화, 드라마, 뷰티 등 문화력까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 보고서 2023’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37개국 중 57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에선 35위로 최하위권이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입소스(IPSOS)가 공개한 ‘세계행복 2023’ 보고서에도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57%로 조사 대상 32개국 중 31위다. 한국방정환재단에 따르면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 역시 OECD 22개국 중 최하위다.
선진국만큼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들이 수백 년간 쌓아올린 ‘성숙과 숙고’의 경지까지 올라갈 수는 없다. 성숙사회가 되려면 숙고하는 국민이 다수가 돼야 한다. 성숙은 모방이 아니라 사색과 성찰에서 나온다. 성장한 만큼 성숙하지 못해 빚어지는 온갖 사회적 문제는 ‘압축성장의 그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만 해도 연평균 9%에 달했던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최근 들어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역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2년 보고서에서 2023~2027년 2% 수준인 잠재성장률이 현재 생산성 수준이 유지되면 2050년에는 0%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OECD는 2021년 보고서에서 한국은 2025년에 1%대 성장에 진입한 이후 2033년 0%대 성장, 2047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압축성장 뒤에는 그늘이 생기고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느리더라도 내실을 다지는 것이 견실한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그늘을 지우고 겉보다는 속을 알차게 채워야 할 때이다.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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