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화약통으로 만들어” 중국이 미국을 비판한 까닭은
미국이 대만 쪽에 대전차 지뢰 살포 장비 등 약 1800억원 규모의 무기를 수출하기로 했다. 중국은 “대만을 화약통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2023년 7월6~9일)을 발표한 직후, 중국 쪽은 반도체 등 첨단제품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2종에 대한 수출제한 조처를 내놨다. 상대방을 ‘최대 외부 위협’이라 여기는 미-중의 인식은 고착화했다.
“정치제도 측면도 미국은 최대 위협”
“디커플링(공급망 분리), 디리스킹(위험 완화) 등의 개념은 경제적 세계화와 국제 금융관계를 약화하는 것은 물론 일종의 정치적 무기로도 활용될 수 있다. 그 목적은 국제 무대에서 신흥개발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동력이 약화했지만, 세계 각지의 상호 의존성은 여전히 깊다. (…) 국가 간 넘기 힘든 장벽을 다시 세우려는 것은 과거 회귀이자 시대착오적 행태다.”
브라질 대통령을 지낸 지우마 호세프 브릭스(BRICS) 신개발은행장은 2023년 7월2일 중국 베이징에서 칭화대학 등이 주최한 제11회 세계평화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쪽이 최근 들어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이란 표현을 쓰지만, 신흥개발국 처지에선 달라질 게 없다는 얘기다. 신개발은행은 브릭스 회원국인 중국과 러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신흥개발국의 인프라 확충을 위한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2015년 중국 상하이에 설치됐다. 중국은 신개발은행을 미국(달러화) 중심의 국제 금융시스템에 대한 대항마로 키우려 한다. ‘진영 대결’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신문망> 등 관영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포럼 이틀째인 7월3일 ‘격동의 세계 속 중-미 관계 안정’을 주제로 한 패널 토론이 열렸다. 중국 국제정치학계 원로인 왕지쓰 베이징대학 국제전략연구원장은 “미국이 조만간 전략적 양보를 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0년대 중반부터 ‘두 개의 질서’ 또는 ‘두 개의 패권’을 미-중 관계의 핵심으로 지적했다. 곧 중국 쪽은 미국이 공산당 주도의 자국 국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미국 쪽은 중국이 자국이 주도해온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것을 막으려 하면서 충돌한다는 주장이다. 이날도 왕 원장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개인적으로 중국은 국가안보뿐 아니라 정치제도 측면에서도 미국을 최대 외부 위협 세력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중국의 정치체제를 바꿀 뜻이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미국이 보이는 행태와 중국 정치체제에 대한 미국 내부의 부정적 인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양국 관계에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이는 매우 취약한 것으로 ‘정찰 풍선’ 사태와 유사한 사건이 터지면 양국 관계가 다시 요동칠 수 있다. 일부의 소통 노력에도 양국 입장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 양국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경제·외교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왕 원장의 지적대로 미-중은 대화하되, 불화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옐런 재무장관의 방중 일정을 공개하면서 미 재무부는 “세계 양대 경제대국인 미-중이 양국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고, 서로의 우려 사항에 대해 직접 소통하고, 세계적 도전 과제에 공동 대응하는 것의 중요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반면 중국 재정부가 7월3일 내놓은 옐런 장관 방중 관련 자료는 달랑 한 문장으로, “고위 인사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만 적혀 있다.
“중국 내정 거칠게 간섭” 성명
재정부의 발표 직후 이번엔 중국 상무부가 나섰다. 반도체 등 첨단제품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8월1일부터 시행한다는 발표였다. 내세운 명분은 ‘국가안보’다. 같은 이유로 중국의 첨단기술·장비 접근을 차단한 미국에 대한 ‘맞불’이란 뜻이다. <로이터> 통신은 7월1일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영국 옥스퍼드셔에서 한 강연 내용을 따 “중국은 기존 국제 질서를 바꾸려는 의도는 물론 갈수록 그럴 만한 경제·외교·군사·기술적 능력을 키우는 유일한 나라”라고 전했다.
“미국은 중국의 핵심 우려를 무시하고 중국 내정을 거칠게 간섭했다. 의도적으로 대만해협의 긴장을 높이는 것은 대만을 ‘화약통’으로 만들고, 대만 인민을 재난의 나락으로 몰아넣는 짓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억제하려는 것도, (대만) 민주진보당 당국이 미국산 무기를 이용해 독립을 모색하려는 것도 모두 망상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다.”
탄커페이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7월5일 내놓은 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앞서 <대만중앙통신>(CAN) 등은 6월29일 대만 국방부가 1억4100만달러(약 1840억원) 규모의 미국산 M136 ‘볼케이노’ 대전차 지뢰 살포 시스템 14기 등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볼케이노 시스템은 차량 또는 헬기에 장착한 살포 장비를 이용해 대전차 지뢰 960발을 길이 1100m, 너비 120m에 이르는 지역에 4~12분 만에 살포할 수 있다. 중국군의 대만 상륙작전 대비용이란 뜻이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방중으로 대화의 물꼬를 튼 미-중은 오랜 협상 끝에 1979년 1월1일에야 외교관계를 맺었다. 수교 협상 때 최대 쟁점은 대만이었다. 중국 쪽은 △상호방위조약 폐기 △미군 철수 △단교를 3대 요구로 제시했다. 미국 쪽은 “조약 폐기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득했다. 결국 양국은 조약 폐기 대신 ‘종료 통보 1년 뒤 자동 효력 정지’란 우회로에 합의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미-중 수교와 함께 시작됐다.
민진당 후보가 ‘독립 선언 뜻 없다’
“2024년 1월 총통 선거에서 당선되더라도 대만의 독립을 선언할 뜻이 없다.” 2023년 4월 민진당 총통 선거 후보로 선출된 라이칭더 현 부총통은 7월4일치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대만해협 평화 유지 방안’이란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라이 부총통은 스스로를 ‘대만 독립을 위한 실용적 일꾼’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런 그가 총통에 당선되더라도 ‘일방적 현상 변경’(대만 독립 선언)을 시도하지 않으리란 점을 강조한 것은 ‘만일의 사태’를 우려하는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대만 총통 선거 시점에 미국에선 대선 운동이 본격화한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별들의 전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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