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TV수신료 가치를 높이는 일

미디어오늘 2023. 7. 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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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1409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KBS는 홈페이지에 '수신료'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접속하면 한 눈에 들어오는 게 수신료 가치에 공감한다는 시청자 의견이다. 일곱살 소녀를 키우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KBS 1TV 인간극장 방송분에 “공익적인 방송으로 시청자들에게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어 감사하다”는 의견이 인상깊다.

윤석열 정부는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안을 끝내 의결했다. 어떤 권력으로부터 눈치보지 않고 공적 책무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한 수신료의 기능을 무력화한 것이며 결국 방송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한다.

▲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조승래 의원 등이 7월5일 오전 전체회의가 열리는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 항의 방문해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과 면담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텔레비전방송수신료(KBS·EBS 방송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따로 떼어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한다. ⓒ 연합뉴스

절차적 흠결이나 상위법 충돌 여부 등을 따지는 법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인데 중요한 것은 수신료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공영방송 존재 이유는 꺾일 수 없다는 점이다.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안으로 인해 공적 재원 마련이 힘들어졌다고 해서, 즉 '게임'이 끝났다며 수신료 가치에 반하는 대응에 나섰을 때 그게 바로 정권이 노리는 방송 장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극장을 본 시청자 의견을 소중히 다루는 것처럼 KBS는 수신료 가치를 빛낼 수 있도록 공익 프로그램 제작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계속해서 시청자와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2021년 구성한 '공적책무와 수신료 공론화위원회' 조사 활동을 연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 수신료 인상을 염두에 둔 조사였지만 수신료에 대한 심층 여론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1~2차에 걸쳐 각각 200여 명 넘는 시민을 상대로 숙의 토론을 진행했던 것은 그 자체로 수신료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KBS는 자사 공적책무 역할을 6가지로 정리했다. △상업적 미디어 시대에 별도로 공익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 △공정하고 객관적인 뉴스를 제공하는 역할 △국가적인 재난·재해 시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 △전국적인 이슈 뿐 아니라 각 지역의 관심사를 보도하는 역할 △소수자나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 등이다.

KBS는 이런 공적 책무 역할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청자의 답변을 받아 점수를 매겼다. 숙의토론을 시행하고 수신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는지 묻는 조사를 진행하면서 수신료 문제 역시 충분히 설득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KBS는 수신료 가치를 논할 최소한의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했다고 억울할 수 있겠지만 공적 재원 마련 대안을 찾기 위해서라도 공영방송의 지위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이를테면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KBS 공적 프로그램을 보는 대중을 상대로 수신료 가치를 강조하는 여론전도 기획해볼 수 있을 것이다.

▲ KBS 홈페이지 갈무리.

수신료 가치를 깎는 내부 요인을 제거하고 해소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KBS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겉으로만 수신료 가치를 내세우고 정작 내부로 향할 수 있는 공적 책무 역할을 등한시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현재 KBS는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의 단체교섭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방송작가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석될 수 있는 행위가 공영방송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작가지부는 비현실적인 원고료와 기획료, 차별적인 수당 문제 등을 노동자 구성원이 모인 단체를 통해 해결하려는데 KBS는 '자격없음'을 통지한 셈이다.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약자 문제에 귀를 기울이는 공적 책무 역할을 방기한 것이며 사실상 방송작가 노동자 지위를 지우려는 상징적 조치에 해당한다. 아무리 수신료 가치를 강조하면 무엇하나. KBS 내부에서 벌어진 '모순'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면 어느 누가 수신료 가치를 알아준단 말인가. 당장 대중은 KBS 정규직 억대 연봉과 방송 프로그램 제작 기획료 몇만 원을 비교하지 않겠는가. 비정규직 문제를 비용 절감 차원으로만 대응한다면 수신료 가치 측면에서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BS도 마찬가지다. EBS는 수신료 2500원 중 70원을 배분받고 있다. EBS는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재원 구조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악화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안정적인 재원 마련 없이는 공적 기능이 후퇴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 7월5일 경기도 일산 EBS 로비에서 EBS 청소노동자 청년학생 결합의 날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윤유경 기자

방송 효능감에 비춰 EBS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은데 들려온 것은 경영악화로 청소노동자를 해고한다는 소식이다. EBS 본사 로비에 울려퍼진 것은 EBS를 보고자란 대학생들이 배신감을 느낀다는 목소리다. 인력 고용 문제와 관련해 책임과 권한 밖이라는 EBS 입장은 원청-하청 한국사회 노동이중 구조 문제를 말할 때 맨날 듣는 주장 아닌가. 이것만 알아두자. 올해 추진과제로 “사회공동체 강화(약자와의 동행)”을 내세웠던게 EBS다.

시청자가 미래를 위해 투자하도록 인식하게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 공적 책무 역할을 내부에도 엄격히 적용하는 것. KBS와 EBS가 수신료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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