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이어 외아들까지 전투기 추락사, 한 여인의 기막힌 사연 [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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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인공지능)로 ‘부활’한 한 순직 조종사의 어머니 사연에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흘렸는데요,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많은 국민들을 울린 주인공은 고 박인철 소령(추서·공사 52기)과 어머니 이준신씨인데요, 박 대위는 지난 2007년 서해 상공에서 KF-16 전투기 훈련 중 안타깝게 사고로 순직했습니다.
고 박 소령은 사고 당시 중위여서 사고 직후엔 대위로 추서됐지만 사실은 대위 진급 예정자여서 뒤에 사고 전날 대위로 진급한 것으로 간주, 소령으로 1계급 추서 진급됐다고 합니다.
◇ 훈련 중 아버지는 F-4E, 아들은 KF-16 추락사고로 순직
고 박 소령은 1984년 F-4E를 몰고 팀스피릿 훈련에 참여했다가 순직한 고 박명렬 소령(공사 26기)의 외아들입니다. 어머니 이씨는 남편에 이어 외아들까지 전투기 추락사고로 잃은 정말 기막힌 사연을 가지신 분인데요, 제가 파악한 바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박 소령은 이씨가 서른한 살이던 남편을 잃고 네 살 때부터 홀로 키워낸 외아들이었는데요, 제가 이런 순직 부자(父子) 조종사 사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007년 박 소령이 사고로 순직한 직후였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었던 이씨는 처음엔 외아들이 아버지의 길, 즉 공군 파일럿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남편에 이어 외아들까지 사고로 잃을까봐 걱정이 돼 그러셨다는데요, 그런 심정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셨다고 하는군요.
◇ 고 박 소령, 국립현충원 아버지 묘소 참배한 뒤 50여일만에 사고
외아들은 아버지의 꿈을 마저 이루겠다며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조종사가 됐고, 국립서울현충원 아버지 묘 앞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 뒤 50여 일 만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이런 기막힌 사연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두 분 부자 조종사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모교인 공사에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제 웹사이트 ‘유용원의 군사세계’와 제가 참여하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에서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뒤 일부 군 예비역들께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인데 부끄럽다” “다른 순직 조종사들도 많은데 형평성 문제가 있지 않을까” 등의 말씀을 하셔서 저는 “이런 일은 오히려 군 당사자가 아닌 민간인들이 하는 게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순직 부자 조종사 사례는 세계적으로 없는 일이기 때문에 형평성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설득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이 좀 있었습니다만 2년여의 노력 끝에 지난 2009년7월 공사에서 순직 부자 조종사 흉상 제막행사를 하게 됐습니다.
두분 흉상은 전투기 동체 위에 상반신이 얹혀져 있는 독특한 형태인데요, 이를 ‘기인동체’(機人同體) 형상이라고 합니다. 전투기와 조종사가 한 몸이 된다는 공군 파일럿들의 철학이자 좌우명에 따른 것인데요, ‘유용원의 군사세계’ 오랜 회원으로 조형물을 만드신 김지훈 작가님이 김규진 전 공군 정훈공보실장님 등의 고견에 따라 만든 것입니다.
◇ 어머니 이씨, 현충일 행사장에 윤대통령과 함께 입장하기도
당시 흉상 제막식에는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현 성우회장), 배창식 전 공군작전사령관, 성일환 공사교장 등 3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고, 어머니 이씨는 “이렇게 흉상으로라도 오래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쁘고 주변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라도 국방부와 국방홍보원의 노력으로 부자 조종사와 이씨의 사연이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져 정말 다행입니다. 그동안 국방부와 국방홍보원의 대국민 홍보에 대해 미흡하다는 지적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번에 제대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 이씨에 대해선 이미 현정부 들어 각종 호국보훈 행사에서 배려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지난 6월1일 ‘국가유공자 지원을 위한 기부금 전달식’에 참석해 이씨에게 직접 기부금을 전달하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6월6일 현충일에는 윤 대통령과 함께 동작동 국립현충원 행사장에 입장하기도 했습니다.
만시지탄입니다만 순직 부자 조종사와 어머니 이씨 같은 분들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정부와 군 당국의 예우도 개선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노력과 변화가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2009년 부자 조종사 흉상 제막식 때 참석자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줬던 당시 김재창 한국국방안보포럼 공동대표(예비역 육군대장)의 추모사 일부를 소개하며 제 금주 뉴스레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 “낮에는 해가, 밤에는 별이 부자 조종사 흉상 더 밝게 비춰주길”
‘전시와 평시를 구분하기 어려운 공군의 경우 훈련과 전투를 구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저 파란 하늘을 지킬 수 있었고 하늘을 지켰기에 바다와 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중략) 아버지가 순직할 때에 엄마 품에서 겨우 말을 배우던 아들이 자라나서 아버지가 남긴 말을 기억하면서 아버지처럼 그 하늘을 지키겠다고 나선 아들의 용기와 결단을 널리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중략) 나라를 지키는 일은 현대 무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방의 생명은 젊은이들의 의지와 군인정신입니다. 그리고 그 정신을 키워낸 그 사회의 문화입니다. 이 교정에서 심신을 연마하는 생도들이 아버지와 아들 조종사의 군인 정신을 이어 받을 것입니다. (중략) 이 부자 조종사의 흉상을, 낮에는 해가, 밤에는 별이 더 밝게 비춰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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