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22대 국회에 더 많은 국회의원이 필요할까
더 많이 뽑는다고 국민 대표성 오를까 의문
의원 정수 확대, 데이터 기반 근거 제시 있어야
모두가 공감할 만한 목표지만 문제는 정치개혁 논의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3월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선거구 조정이나 비례대표 확대 등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변경” 시 57%가 “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고 답했고 30%가 “현재가 적당하다”고 답했다. “늘려도 된다”는 9%에 불과했다. 심지어 “늘려야 한다”도 아니었다.
사실 국회의원 정수만 아니면 유권자들은 정개특위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좀 더 정확히는 ‘기대’가 없어 보인다. 어차피 국회의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인데 의원 정수만 늘리지 않는다면 ‘그들만의 리그’로 보는 것이다.
지난 총선의 경우를 보자. 작년 대선에서는 두 거대 정당 후보의 득표율 차가 0.73%포인트였지만 총선에서 지역구별로 나눠 보면 상당히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21대 총선에서 ‘지역구별 분산’은 2020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보다 매우 낮았다. ‘지역구별 분산’은 해당 유권자의 의견이 얼마나 갈리는지를 알 수 있는데, 지역구의 인구가 많을수록, 득표율이 5 대 5에 가까울수록 커진다. 분산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대표되지 못한’ 유권자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분산도 크고 인구도 늘고 있는 미국에서도 하원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논의는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어서 곧 인구 감소도 시작된다.
또 지역구별로 두 거대 정당 후보의 총득표를 100이라고 했을 때 두 거대 정당 후보들 간 득표율 차를 계산해 보니 평균 26.1%포인트였다. 즉, 두 거대 정당만 고려하면 승자와 패자 간 격차가 상당하다. 전체 253개 지역구 중 10%가 넘는 29개 지역구에서는 격차가 무려 90% 대 10% 이상(80%포인트 이상)이었다. 이런 지역구에서 한 명을 더 뽑는다고 ‘10%’를 대표하는 후보가 당선될까.
이런 지역구들을 통폐합하여 줄어드는 수만큼 상대적으로 득표율 차가 작고 인구가 많아 당선자의 ‘대표성’이 떨어지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구에서 더 뽑으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도 대표성 제고가 가능하다. 왜 이런 주장은 국회의원 누구도 하지 않을까.
반면 국회의원 정수가 늘어나면 생길 폐해를 예측 가능케 하는 데이터는 차고 넘친다. 필자가 21대 국회의원들의 4392회 표결에 기반하여 통계적으로 의원별 표결 성향을 추정하여 분석해 보면 지역구 성향과 표결 성향의 상관관계는 거의 0에 가까웠다. 가령 서울 지역구의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의원들도 각자의 텃밭인 호남이나 영남 지역구 의원들과 다를 바 없었다. 더 많이 뽑는다고 ‘대표성’이 올라갈까.
거기다 비례대표들은 각 정당에서 가장 극단적인 투표 경향을 보였다. 실제 두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 득표율이 거의 동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비례대표가 지역구 의원들보다 극단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과연 정당 공천으로 국회 입성 후 지역구 공천을 받기 위해 선명성 경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비례대표를 늘려 ‘비례성’이 강화될지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결과다.
매번 국회 종료 때마다 자동폐기 법안 수가 경신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2만4000건이 넘는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이 가운데 60% 정도인 1만5000여 건이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되었다. ‘보여주기’를 위해 법사위 통과도 불분명한 ‘불량 법안’ ‘재탕 법안’들을 경쟁적으로 발의한 결과다. 매년 ‘망신 주기’ 국감으로 기업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얼마나 더 많은 ‘타다 금지법’이 만들어지고 얼마나 더 많은 ‘국감 피해자’가 나와야 하나.
‘유권자 자신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그들을 위해 국회의원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려면 국회의원 정수 증가와 대표성 제고, 승자 독식 폐해 완화, 지방 소멸 위기 개선 등의 인과관계에 대해 데이터에 기반한 근거 제시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니면 ‘정작 유권자들은 싫다는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회 특위까지 구성해 어떻게든 부정적 여론을 바꿔보려는 시도’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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