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물끄러미, 여름
2023. 7. 1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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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나 벽에, 손바닥에 피를 묻히지 않고 여름 한철을 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나 부디 이 여름에는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거울 속에 손을 넣어" 어서 그를 건져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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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호수
거울에 붙은 모기를 죽이려다
무언가를 죽이려 다가가는 얼굴을 들켰다
웅덩이에 빠져 몸을 휘젓는 지렁이를 빤히 바라보다
깜짝 놀라 지렁이를 건져냈다
정오의 태양은 태양으로 가득했고
손차양을 하다
손등에 난 점 하나를 처음 발견했다
기적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구름에게 하루를 다 내어주어도 좋았다
그해 여름엔
거울에 피를 묻히지 않았고
거울 속에 손을 넣어 지렁이를 건져냈다
(후략)
무언가를 죽이려 다가가는 얼굴을 들켰다
웅덩이에 빠져 몸을 휘젓는 지렁이를 빤히 바라보다
깜짝 놀라 지렁이를 건져냈다
정오의 태양은 태양으로 가득했고
손차양을 하다
손등에 난 점 하나를 처음 발견했다
기적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구름에게 하루를 다 내어주어도 좋았다
그해 여름엔
거울에 피를 묻히지 않았고
거울 속에 손을 넣어 지렁이를 건져냈다
(후략)
거울이나 벽에, 손바닥에 피를 묻히지 않고 여름 한철을 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산책로 곳곳에 널브러진 지렁이를 다치게 하지 않고. 그러나 부디 이 여름에는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푸르게 푸르게 솟구치는 갖가지 생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꺼이 생각에 잠기는 인간이기를. ‘인간’이기를. 숨을 고르고 천천히 걷기를. 태양보다 구름의 편에 서서 어둡고 고독한 그 무엇도 외면하지 않기를. 그러다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조그만 몸을 파닥이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를 쓰는 한 존재가 바로 거기 있음을. “거울 속에 손을 넣어” 어서 그를 건져낼 것. 무엇보다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 부디 이 여름에는.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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