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금지’ 헌법 무력화하고…엘살바도르 대통령 재선 도전

최서은 기자 2023. 7. 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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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전쟁’ 등 민심 업고
헌법 유권 해석 바꿔 출마
독재화 길 걷나 안팎 우려

‘대통령 연임 금지’ 국가인 엘살바도르에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사진)이 재선 도전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부켈레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부켈레 대통령은 여당인 ‘새로운 생각(NI)’의 대선 예비 후보로 등록했고, 이날 투표를 통해 공식 후보로 선출됐다.

엘살바도르는 헌법상 대통령의 연임이 금지돼 있다. 엘살바도르 헌법은 ‘대통령 임기 개시 6개월 전 또는 직전 정부에서 6개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한 자는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1년 대통령 연임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을 우회하는 새로운 유권 해석으로 부켈레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는 부켈레 대통령이 법관들과 법무장관을 친여 성향 인물로 교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명백한 위헌이라며 반발했고, 미국도 공개적으로 규탄한 바 있다.

여당은 국가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부켈레 대통령이 계속 집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독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한 일부 중남미 국가들에서 독재자가 출현하는 과정은 대체로 비슷했다. 민주 선거를 통해 집권한 지도자가 헌법을 고쳐 장기집권의 길을 트고, 언론을 통제하고, 여러 장치를 마련해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를 치르는 방식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켈레 정부는 갱단 소탕작전을 펼치며 강도 높은 치안 정책을 유지해왔다. 현재까지 체포된 사람만 약 6만9000명에 달하며, 수감자가 늘면서 교도소 수용시설이 부족해지자 얼마 전 범죄자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교도소를 새로 준공했다. 이 교도소의 부지 면적은 165만㎡로, 여의도의 절반 크기를 웃돈다. 그러나 고문, 구타, 대량 구금, 과밀, 적법 절차 위반 등 극단적 무력 사용과 인권침해로 국제사회와 인권단체의 비판을 받아왔다. 인권단체에 따르면 체포된 사람들 중 갱단과 명확한 관계가 있는 사람은 약 30%에 불과하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부켈레 대통령은 국민에게 높은 인기를 얻어 왔다. 지지율은 80%까지 육박했고, 2021년 총선에서는 압승을 거둬 의회도 장악했다. 지난달 엘살바도르에서 열린 2023년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스포츠 경기에서 부켈레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듯 “나는 독재자가 아니다”라며 “우리 국민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폭발적인 박수와 함께 환호했고, 일각에서는 “재선”을 외쳤다.

AP통신은 이 스포츠 행사에 대해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가 월드컵을 개최하고 나치 독일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30년대를 연상케 한다”면서 “부켈레 대통령이 스포츠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AP통신이 나를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비교한다”며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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